[단독] 고조선 후예가 찾았다, "흉노제국 금속 마차"
입력 2017.12.12. 05:06수정 2017.12.12. 07:56
고조선과 이웃한 유목 민족
몽골서 대형마차 원형 첫 발굴
6개 기관·대학 참여한 조사단
흉노 초창기 연구에 최대 성과
[한겨레]
↑흉노 무덤 안에서 발견된 마차 바퀴를 확대한 모습.
'> 몽골평원에서 문화재를 발굴 중인 한국 고고학자들이 2천여년전 고조선과 이웃하며 세력을 떨친 흉노제국 초기의 귀족 무덤과 네바퀴로 달렸던 금속제 대형 마차 실물을 처음 찾아냈다.
안개에 싸인 기원전 1~2세기 흉노 초창기 역사를 밝혀주는 유적·유물들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학계의 국외 발굴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이런 성과를 낸 곳은 중앙매장문화재연구원, 동서문물연구원 등 4개 발굴기관과 서울대, 충북대가 함께 꾸린 유라시아 발굴조사단(단장 조상기)으로, 지난해부터 몽골과학아카데미와 손잡고 현지 발굴을 벌여왔다.
조사단은 지난 6~7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치헤르틴 유적의 적석(돌무지)무덤을 조사한 결과 바퀴가 각각 네 개 씩 달린 사륜마차 2대의 실물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몽골과 중국 내몽골 흉노 귀족 무덤에서 한나라 시대의 마차 잔해나 부품들은 간간이 출토된다.
그러나 4륜 대형 마차의 원형이 온전하게 나온 것은 몽골 현지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다.조사 내용을 보면, 마차가 나온 1호 무덤은 구덩이 깊이가 11m를 넘고 바닥 지름은 20m에 이르는 돌무지무덤이다.
묘광(무덤구덩이) 내부는 나무 관에 주검을 넣고 다시 나무 덧널(목곽)로 감싼 얼개를 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유물인 마차 2대는 목곽 양옆 동서쪽에 마주 보는 식으로 묻혀 있었다. 목곽 동쪽에서 나온 마차 유물은 청동제, 서쪽에서 나온 마차 유물은 철제이며 표면에 각각 칠기를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단은 중국 특유의 칠기 재료를 사용한 점으로 미뤄 중국제 마차를 수입해 부장품 용도로 묻었다고 보고 있다.
출토된 마차 본체와 바퀴들은 70~80년대 중국 시안 진시황릉 병마용 갱에서 나온 마차 출토품과 겉모양이 비슷하다. 바퀴를 단 마차 위에 살대를 올리고 우산 같은 차양 막을 드리운 얼개다.
또 목곽과 목관 사이에는 재갈, 굴레장식 따위의 철제 말갖춤(마구), 금장식 칠기, 토기 조각, 옥제 품, 유리구슬 등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단에 따르면 중국, 몽골 등지에서 그동안 조사된 흉노 귀족 무덤은 기원 전후 것으로 바닥 평면이 네모지고 ‘凸(철)’자형 구조를 갖춘 대형 적석무덤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이보다 200년가량 앞선 시기의 원형 바닥 평면의 적석목곽무덤에서 대형 마차 등의 귀족 부장품이 처음 확인돼, 초창기 흉노 귀족 무덤의 원형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조사에 참여한 양시은 충북대 교수는 “함께 나온 청동과 뼈 재질 화살촉 등의 분석연대로 볼 때 무덤 시기는 기원전 2세기께 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전례 없는 초기 귀족 묘 발굴로 흉노 초창기 역사의 공백을 메울 소중한 고고학적 자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지름 20m, 깊이 11.7m의 무덤 안에서 발견된 마차 바퀴.
흉노는 고대 유라시아의 대표적인 유목민족으로 기원전 1세기~기원 전후 한나라를 제압해 강성한 대제국을 형성했다. 4~5세기 민족 대이동으로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이 후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만주 일대의 고조선과도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고 추정되며, 한나라 무제가 흉노와의 연계를 끊기 위해 고조선 정벌을 감행한 사실이 <사기>에 전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유라시아 발굴조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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