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촌(1) 2017. 3. 28. 01:27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

 

◇출생 : 1841. 10.14/일본 스오 구니[周防國]

◇초선통감 제임기간 : 1906. 12. 21~1909. 6. 14)

◇사망 : 1909.10.26(중국 만주 하얼빈)/안중근의사사살

◇주요경력 : 일본수상 4회, 조선총독. 청일전쟁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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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하고 양원제 의회를 확립했다. 당시 지배세력의 몰락과 일본 내 서양 세력의 등장으로 빚어진 혼란스런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영국에 유학하면서 선진문물을 익혔다.

 

정치가로서 능란한 수완을 발휘해 반대세력을 물리치는 한편, 총리가 된 뒤 영국과 조약을 맺어 일본 내의 영국인에 대한 치외법권을 없앴고 청일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정치적으로도 유연했던 그는 고위관료와 정당 사이에서 타협자의 역할을 추구했다. 실행 가능한 헌법체계를 탄생시켜 평화로운 정치변혁을 꾀했고 국민들의 정치참여라는 과정을 통해 정치의 폭을 더 넓혀놓았다. 

 

하지만 그의 접근방식은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일본 내 강경파의 비판을 받았다. 1909년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독립운동가인 안중근의사에게 저격돼 죽었다.

 

 

↑통감부로 향하는 이토 히로부미(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