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근현대 인물

현민 유진오 박사(玄民 兪鎭午 博士)

야촌(1) 2015. 10. 11. 18:00

유진오(兪鎭午)

 

[간략정보]

 

◈한자 : 유진오(兪鎭午)

◈분야 : 정치·법제·행정

◈성격 : 법조인|교육가|정치인

◈출신지 : 서울

◈성별 : 남

◈생년 : 1906년

◈몰년 : 1987년

◈본관 : 기계(杞溪)

◈저서(작품) : 헌법해의/헌법강의/양호기/구름 위의 만상

◈대표관직(경력) : 법제처장/고려대학교 총장/신민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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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1987년. 법학자·교육 행정가·정치인. 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현민(玄民). 서울 출생이다.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치형(致衡)이다. 1914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6년 동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한 뒤 1929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동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있으면서 예과에 강사로 나갔다.

 

1933년 4월부터 보성전문학교 전임강사가 되어 1936년 4월 교수가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잠시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겸하였으나 고려대학교에 남아 법정대학장(1946∼1949)·대학원장(1949∼1952)·총장(1952∼1965)을 역임하였다.

 

한편, 법전편찬위원회 위원(1946∼1950)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였고, 법제처장(1948∼1949), 고등고시위원(1949∼1955), 6·25전쟁 때 부산 전시연합대학 총장(1951), 한일회담 한국측 대표(1951∼1952), 대한국제법학회장(1953∼1968), 한국공법학회장(1957∼1961), 한국법철학회장(1957∼1965), 대한교육연합회장(1960∼1965),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1961)을 역임하면서 교육·문화·사회의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55년 연희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4년부터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고려대학교 총장직을 은퇴하고 야당 정치활동에 투신하여 민중당 대통령후보(1966)가 되었고, 신민당 총재(1967∼1970)와 국회의원(1967∼1971)을 지냈다. 1983년부터 투병생활을 하다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하였다.

 

법학을 공부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문학가로서 필명을 날리기도 하였던 그는 광복 후 헌법학자로 『헌법해의(憲法解義)』(1949)·『헌정의 기초이론』(1950)·『헌법강의』(1953)·『헌법기초회고록』(1981) 등의 저서와 『민주정치에의 길』(1963)·『양호기(養虎記)』(1977)·『미래를 향한 창』(1978)·『구름 위의 만상(漫想)』 등의 저서가 있다. 문학작품으로 「창랑정기」·「김강사와 T교수」 등도 널리 알려졌다.<민족문화대백과>

 

[참고문헌]

『현민유진오의 법사상』(전광석, 연세법학, 1992)

『한국법사상사』(최종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9)

『한국의 법학자』(최종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9)

『위대한 법사상가들』(최종고, 학연사, 1985)

 

 

현민 유진오 박사(玄民 兪鎭午 博士)

 

↑현민 유진오 바사 묘(玄民 兪鎭午 博士 墓)/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산88~2

 

 

 

↑1967년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유진오(왼쪽). 당시 그는 신민당 총재였다.

    우측은 이기택(李基澤) 제7대 전국구 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