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공주유필(貞明公主遺筆)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선조 36)∼1685(숙종 11). 조선 중기의 공주. 선조의 적녀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죄로 사사하고 계비 인목대비를 폐출시켜 서궁(西宮)에 감금할 때 공주도 폐서인(廢庶人)되어 서궁에 감금되었다.
인조반정으로 공주로 복권되고, 1623년(인조 1)에 동지중추부사 홍영(洪霙)의 아들인 18살 주원(柱元)에게 21살의 나이에 시집을 갔다. 인조의 특명으로 사저(私邸)가 중수되었으며, 뒤에 연령군(延齡君-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여섯 째 아들)이 사용하였다.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죽은 뒤 궁중에서 백서(帛書 : 비단 위에 쓴 글)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무도하다고 하여 공주도 효종의 의심을 받아 영안위(永安尉-남편 洪柱元)의 궁인이 고문을 받아 여럿이 죽기도 하였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다시 종친으로서 후대를 받았다. 숙종 때의 이조참판 홍석보(洪錫輔)는 증손이며, 수찬 이인검(李仁儉)은 외증손이다.
정명공주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남자가 쓰기에도 힘에 부친다는 한석봉의 필법을 수련하는 데 정진했다.
정명공주는 서 궁에 유폐된 동안 ‘화정(華政)’을 비롯한 많은 서예 작품을 썼다.
모녀가 처한 비극적 상황은 정명공주를 조선 최고의 여류 서예 작가 반열에 올려놓는 바탕이 되었다.
《화정(華政)》은 글자 하나의 사방이 각각 73cm나 되는 대작이다. 연약한 여성의 체력으로 이런 글씨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술사가로부터도 타고난 명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문한(文翰)은 부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라는 유교적 습속 때문에 정명공주는 자신의 작품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이 때문에 정명공주가 글씨를 잘 쓰고 문장에 능하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화정(華政)》은 정명공주가 죽은 후 막내아들 홍만회(洪萬恢, 1643~1709)가 물려받았다.
홍만회는 혹시라도 《화정(華政)》이 사라질까 두려워 여러 벌의 탁본을 떠서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그들 중 남구만(南九萬, 1629~1711)에게는 발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서화가인 남구만은 저서 《약천집(藥泉集)》에서 정명공주의 필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공주의 막내 아드님인 무주군이 공주가 서 궁에 계실 때 쓰신 ‘화정’이라는 두 대자를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는 선비(先妣, 돌아가신 어머니)의 필적입니다.
선비께서 평소 겸손해 하신 뜻을 지킨다면 남에게 보일 필요가 없겠으나 자손들이 선비를 사모하는 마음을 지닌다면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우환의 즈음에 쓴 것이고 화려한 날에 쓴 것이 아님을 밝혀 주십시오.”
이에 나는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주는 안으로는 밝으시지만 밖으로는 감추고, 재능이 있으시지만 그 명예를 사양하여 심덕의 온전함이 일부분만 나타났소. 공주의 글씨를 받들어 보니 마치 선조대왕의 필법에서 나온 듯하오. 필적의 기상이 웅건할 뿐만 아니라 온화하면서도 두터워 규중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소.
그 필법에서 심획(心劃)을 얻었고, 그 성정에서 감동하는 교화를 얻었으니 가문이 엄숙하고 화목한 바 없이 그러하겠소.”」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정명공주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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