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대한제국. 근대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야촌(1) 2014. 8. 16. 12:35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다.

 

1.사건배경(事件背景)

   4차례나 일본 제국의 총리를 지낸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대에도 크게

  역할  을 한 장본인이다. 1909년 이에 분노한 만주의 독립 운동가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유승렬, 김성화,

  탁공규는 7인동맹을 맺고 처단을 계획했다.

 

2.사건개요(事件槪要)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15분 일본 제국의 전 총리이자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추밀원 의장 이토는 러시아 재

  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Vladimir Kokovtsov)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한 후, 약 20분 정도 차내에

  서 코콥초프와 대화한 후, 그의 권유에 따라 명예 사령관으로서의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

   다.

 

  그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군대 앞을 막 지나는 순간, 안중근이 권총 3발을 발사이토를 명중시켰고 행

  여 이토히로부미가 아닐 것을 대비해 다시 3발을 주위의 일본 관리들을 쏘았다. 

 

  그러자 수행원인 무로다(室田義文), 나카무라(中村是公) 등이 다급하게 이토를 껴안아 보호했다.

  이때 안중근은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라(한국 만세)」를 두어 차례 외친 뒤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혔고. 이토는

  "당했다"라고 한마디 외쳤다.

 

  이에 다급한 수행원들은 이토를 차내로 옮기고 그가 좋아하는 브랜디를 한잔 따라 건네주었다. 

  이때 이토는 지팡이를 꼭 잡고 있었는데, 무로다가 지팡이를 빼내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잠시 신음하다가 피격 30분 뒤인 오전 10시경에 사망했다.

 

3.안중근의 사형

   안중근은 만주 뤼순감옥(旅順監獄)에서 재판을 받아 사형을 받았고, 함께 거사했던 우덕순은 징역3년 형, 조도선

   과 유동하는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거사를 배후에서 도운 재 러시아 갑부인 교포 최재형이 러시아인 변호사를 준비시켰으나 일본은 러시아인 변호사

   의 접견을 금지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교수형을 당했다.

 

  안중근의 거사 이후, 하얼빈 역 1번 플랫폼에는 거사 현장에 두 개의 도형이 그려져 있다. 

  바닥에 안중근의 저격 지점과 이토의 피격 지점을 표시했다. 

 

   저격 지점엔 가로·세로 각각 50㎝ 크기의 정사각형 안에 세모를 그려 놓았다. 

   세모의 한 꼭짓점이 이토가 섰던 자리를 가리켰다. 이토의 피격 지점엔 정사각형 속에 또 다른 네모를 각도를 50

   도 정도틀어 그려 놓았다.

 

4.사망자 및 부상자

 ○이토 히로부미 : 일본 제국의 추밀원 의장(전 총리. 초대 조선통감), 권총 3발 피격으로, 사망

 ○가와카미 도시히코 : 하얼빈 총영사, 총 1발로 부상

 ○모리 지로 : 궁대대신의 비서관, 총 1발로 부상

 ○다나카 세이지로 : 만주 철도이사, 총 1발로 부상

 

5.저격 가담자

  ○안중근 : 1910년 3월 26일 에 교수형

  ○우덕순 : 3년 형 선고

  ○조도선 : 1년 6개월 형 선고

  ○유동하 : 1년 6개월 형 선고

  ○최재형 : 러시아의 갑부. 거사를 배후지원

 

6.사건영상 필름의 존재여부

   2009년 10월 24일, KBS 제1TV의 역사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에서 ‘[안중근 의거 100년] 이토 저격 영상을

   찾아라’라는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신운용 안중근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은 NHK가 1995년에 제작한 다큐멘터

   리의 일부분에서 의거 당일 동영상을 보고 저격하는 순간의 장면이 없어서 의아해 했다. 

 

  저격 후 보도된 여러 신문 기사들 중 대한매일신보 1909년 11월 21일자에 “한 러시아인(코프지에프)이 촬영한 이

  활동사진엔 안중근이 뛰어나와 7연발 단총으로 이토를 저격하는 광경과 이토의 비서관 등이 쓰러지는 모습이 정

  밀히 찍혀있다” 라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영상의 원본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제작진은 NHK에게 1995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나온 의거 당일 동영상의 출처를 묻고, 원본 영상은 일본의 영

  자신문자판프레스 사원인 다노모기가 샀고,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NHK 다큐멘터리에 쓰인 영상이 1941년에 아사히신문사에서 제작한 〈뉴스영화발달사 약진의 흔적〉을 편집한

  것이라는 것을 알자 그것의 복사본을 구입했다. 그 영상에는 NHK 다큐멘터리에 수록된 것에는 없는 장면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저격하는 장면은 없었다.

 

 위키백과 자료를 일부 편집함

 

 ▲안중근의사 초상화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권총의 동일모델인. 벨기에제 FN M1900 권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