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의 발원지 러시아 연해주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고종의 밀사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어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호소했던 이상설을 비롯하여 최재형과 안중근의 활동무대 이기도 했다.
이상설은 헤이그에서 바로 연해주로 와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1911년 권업회 창설과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 수립을 주관하여 정통령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최재형은 연해주에서 사업으로 벌은 많은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사살되었다.
안중근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기 전에 연해주에서 무장항일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홍범도를 비롯하여 많은 무장투쟁 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연해주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 외롭게 모셔져 있는 이상설선생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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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國民議會
일제강점기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던 임시정부로서. 1917년 5월 러시아의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결성했던 전로한족중앙총회(全露韓族中央總會)의 후신이다.
전로한족중앙총회는 러시아 2월혁명 후 조직된 최초· 최대의 한인 정치조직으로 기존의 한족회· 대한교육청년연합회·권업회(勸業會) 등의 각종 조직과 기타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이 총망라되어 20만 명에 달하는 전 러시아 한인의 임시정부임을 자처했다. 민족을 기초로 하는 단일적인 중앙조직이 성립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919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파리강화회의 개최, 러시아 내란 등 국제정세의 격동 속에서 한인의 자주적 정부를 가져야겠다는 목적으로 대한국민의회로 개칭하고 문창범(文昌範)을 의장으로,김만겸(金萬謙)을 부의장으로 선출하여 해외의 유일한 임시정부임을 자처했다.
독립을 선포하고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혈전(血戰)을 선포하였으며, 파리 강화 회의에 윤해(尹海)· 고창일(高昌一)을 파견했다. 행정부를 조직하여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박영효,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하기도 했다.
또한 전로한족중앙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각계각층의 지도자 70~80명을 의원으로 선출하여 러시아에서의 한인의 민족통일전선을 이루었다. 집행부로 독립군의 조직과 훈련을 담당한 선전부, 독립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재무부, 무기조달을 담당한 외교부를 두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성대한 경축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이 기회를 포착하여 독립운동의 실질적인 앙양을 이루고자 독립운동의 의연금 모집과 청년들의 군사교육을 위하여 뤄쯔거우(羅子溝)에 훈련소를 설치했다.
1919년 5월 상해임시정부에서 노령(露領) 대표 원세훈(元世勳)이 대한국민의회와상해 임시정부의 의정원을 병합하여 정부의 위치를 노령에 정할 것을 제의하자, 의정원에서는 양측을 통합하고 정부의 위치를 노령에 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한성정부와 상해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의 통합이 결정되어, 8월 30일 대한국민의회는 해산을 결의했다. 그러나 상하이에서의 통합작업에 문제가 생겨 대한국민의회 관계자 중 이동휘(李東輝)만 국무총리로 취임했을 뿐 통합정부의 교통총장으로 선출된 문창범은 취임을 거부하고 블라디보스토크으로 돌아왔다.
그로 인해 대한국민의회와 상해 임시정부 사이에는 알력이 생기게 되었으나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러시아 한인의 정치력을 결집해나갔다.
한국에 근접한 연해주의 니콜스크·우스리스키 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자리 잡고 있다가, 1920년 4월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 시와 그 부근 일대의 도시를 공격하고 적군(赤軍) 기관과 한인의 항일기관을 소탕하자 그해 5월 극동공화국 헤이룽강주[黑龍江州]의 블라고베시첸스크로 이전했다.
이전 후 간부들은 적군파에 가담했으며 이후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한인동맹이 러시아 한인을 대표하게 되었다.
↑우수리스크에 1919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건물,
왼쪽 2층이 국민의회 사무실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인 기념관에 전시된 항일운동 50인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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