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世 이철영(李喆榮)
◇생원] 순조(純祖) 28년(182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33위(63/100)
◇음관] 진신보(搢紳譜),
------------------------------------------------------------------------------------------------------------------------------------
1867년(고종 4)∼1919년. 조선 말기 학자‧항일운동가. 자는 계형(季衡)이고, 호는 성암(醒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초려 이유태의 9대손이고 출생지는 충청남도 공주(公州) 중호(中湖)이다.
부친 이홍제(李弘濟)와 모친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 상산박씨(商山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대원(柳大源)의 문인이다.
1904년(광무 8) 일본이 철도부설(鐵道敷說) 명목으로 선영을 침범하자 유림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항의하였다.
1908년(융희 2) 서양의 학문을 돈암서원과 부여향교에서 가르치려 하자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1909년(융희 3)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호적을 만들고자 명을 내리자 이에 항거하다가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곧 풀려났으나 다시 감금되기를 반복하였다.「사상강설(四上講說)」을 지어 후학을 기르는 데 힘썼다.
저서로 『성암집(醒菴集)』 8권 4책과 한글저서 『내범요람(內範要覽)』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성암집(醒菴集)
◇기려수필(騎驪隨筆)
◇판사항 石版本.
◇책수 : 4책(冊)
◇발행사항 : [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1961年]序.
◇형태사항 : 8卷4冊> 四周雙邊, 半郭 20.5 x 15.5 cm, 有界,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28.5 x
19.5 cm.
◇일반주기 : 李喆榮>호는 성암(醒庵)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충남 공주(公州) 출신序: 辛丑(1961年)秋
八月上浣不肖孤李圭龍泣血謹書紙質: 洋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