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현(李相鉉)
1817년(순조 17) 2월 22일∼1895년(고종 32) 2월 17일.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성임(聖任)이고, 호는 만오(晩悟), 경주이씨 21世 월성군파(月城君派) 파조(派祖) 지수(之秀)의 후손으로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司-從二品)와 대사헌(大司憲-從二品)을 지낸 20世 승직(繩直)의 19대손으로 경상북도 예안(禮安: 오늘날 안동시 예안면 분천리)의 사가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이제권(李悌權)이고, 조부는 이광진(李光震). 아버지 이주호(李周顥)와 어머니 김양후(金養厚)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위는 강환(姜桓)의 딸 진주강씨(晉州姜氏)이다.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성취가 빨랐으며 향리의 큰 학자로 존숭되었다. 소죽(小竹) 조동순(趙東淳)‧ 난헌(蘭軒) 홍난섭(洪蘭燮)‧ 연운(硏雲) 서창보(徐昶輔) 등 원근(遠近)의 학자들과 왕래하며 교유하였다.
1878년(고종 15) 영남의 유림들과 함께 서원을 복구해 설립하라는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만인소(萬人疏)를 올렸다. 과거의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후진 양성과 고을의 미풍양속의 진작에 힘쓰다 명성황후가 시해됐던 을미년(1895)에 수(壽)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두형(李斗炯)이다. 묘는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에 있다. 저서로 《만오일고(晩悟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晩悟公逸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