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까지 약 100분' 16일 그 시각, 이렇게만 했다면..
JTBC | 이승녕 | 입력 2014.04.26 22:01 | 수정 2014.04.26 22:02
[앵커]
사고가 일어난 후 열하루째입니다. 생존자는 찾지 못한 채 사망자 수만 불어나는 참담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의 비통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고, 지켜보는 국민도 답답할 뿐입니다. 만약, 4월 16일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에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만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요. 이런 가정,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열흘 전 그 순간에 매뉴얼 대로, 원칙대로, 상식대로 대응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따져보는 일은, 이번과 같은 후진국형 참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승녕 기자가 되짚어 봤습니다.
[기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 첫 번째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입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 고 최모 군이 휴대전화로 119에 신고해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고 연락한 겁니다.
하지만 전화를 건네받은 해경이 세월호의 사고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만 5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엉뚱하게 위도와 경도를 묻고, 침몰이 맞느냐며 거듭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겁니다.
뒤늦게 사고임을 확인하고도, 실제 세월호와 교신하며 지시를 내리는 진도 해상교통 관제센터, 즉 VTS에 연락이 늦었습니다.
진도 VTS가 세월호와 교신한 시간은 9시 7분, 신고 후 15분의 시간이 흐른 겁니다.
만약, 사고 접수 즉시 상황을 파악해 구조대를 출발시켰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특수구조대는 해양 조난사고 구조율 96%를 자랑합니다.
이들은 최초 신고 접수 후 구조 헬기가 떠오를 때까지의 시간을 3분으로 정해놨습니다.
해양 사고는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진도 VTS가 세월호와 처음 교신한 시간은 9시 7분.
그런데 배의 상태를 확인하는 내용 등만 주고받았을 뿐,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케 하라는 확실한 지시를 내린 건 9시 23분이었습니다.
첫 교신 이후 16분이나 지난 뒤입니다.
만약, 이때 선박 긴급 상황 발생 시의 국제적인 기준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비상 상황 시에는, 가장 먼저 승객들에게 경고 방송을 한 뒤 구명복을 입게 하고 사전에 정해져 있는 비상시 탈출 장소, 즉 머스터 스테이션(Muster Station)으로 집합시키는 게 원칙입니다.
게다가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 선원들은 사고 발생 직후 인천의 청해진해운 본사에 연락해 대처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것도 원칙을 무시한 겁니다.
비상 상황에서는 선장이 선사에 연락해 지시를 받을 게 아니라, 자기 책임하에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문예식/경력 25년 선장 : 인적(승객 관련 사항)이나 선박의 화물 이런 것들의 안전과 해양 환경보호를 위한 대응 조치에 필요한 최우선적인 결정권을 선장이 가집니다.]
이 원칙만 지켰어도, 승객들은 탈출에 필요한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9시 38분, 이 시간을 마지막으로 세월호는 더 이상 진도 VTS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놔두고 배를 먼저 탈출한 겁니다.
만약 이때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선원들 몇 사람이라도 남아 도착한 구조대원들에게 정확한 상황만 알려줬어도 인명 구조를 위한 이른바 골든 타임은 더 늘어났을 겁니다.
선원이 승객의 안전을 우선하고 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건, 선원법에 나와 있는 조항입니다.
또한 1845년,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탈출시키고 목숨을 버리며 끝까지 배를 지킨 영국 버큰헤드호 선원들 이후, 국제적인 관례이기도 합니다.
세월호가 사고 발생 후 침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0분.
기본적인 대응원칙만 지켰더라도, 귀중한 생명을 구할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더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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