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문집.고서.문헌

조천일기(朝天日記) - 李忔 著

야촌(1) 2013. 12. 15. 23:07

 

 

 

 

 

 

 

 

 

 

 

■조천일기(朝天日記). 2책.

 

  오계 이흘 저(梧溪 李忔 著)

 

[내용개요]

17세기 초의 文臣 이흘(李忔, 1568(선조 1)-1630(인조 8)이 1629년(인조 7)에 謝恩兼進賀使가 되어 명에 갔을 때의 일을 기록한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 1629년 6월에 明 經略 袁崇煥이 조선의 平安道 鐵山半島에 있던 모문룡(毛文龍, 1579~1629)을 주살한 사건이 있었다.

 

모문룡(毛文龍)군이 後金에 대항한다는 이유 때문에 군수, 군량을 지원하였던 朝鮮은 모문룡군과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한 변무사(辨誣使)를 명에 보내기로 하였으며 謝恩兼進賀正使였던 李忔이 이 일을 담당하였다.

 

본서는 이때의 기록이다. 李忔의 字는 尙中, 號는 雪汀·梧溪,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李天一의 아들이다.

1591년(선조 24)에 문과급제 하였으며 지평, 공조정랑을 거쳐 배천군수, 장단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1629년(인조 7)에 사은사가 되어 海路를 이용하여 명나라에가 변무주문(辨誣奏文)을 전달하였으며 현지에서 卒하였다.

<序>는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이 지은 것이며 李忔의 활동과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다.

 

<日記>는 李忔이 예궐(詣闕)하여 사은숙배(謝恩肅拜)한 1629년 7월 8일에서 이듬해 6월 8일 북경에서 졸하기 전날까지의 기록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경로와 평양에서부터 선박을 이용하여 명(明)에 도착하기까지의 해로를 표기하였으며, 도중에 겪은 일을 날짜별로 적었다.

 

명에서 수집한 후금의 동향 및 명군의 전황에 관한 정보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권2의 말미에는 정령쇄신(政令刷新)을 다짐하는 명 황제의 <황명조훈서(皇明祖訓序)>와 <황명조훈목록(皇明祖訓目錄)> 13조가 전재되어 있으며 연경(燕京)에서 구입한 서책목록(書冊目錄), 일행의 관직과 성명, <수로후부경사(水路後赴京使)> <인신열도(訒申閱道)> <조사출래(詔使出來)> 등의 항목이 부기되어 있다.

 

<속록(續錄)>은 제술관(製述官) 이장배(李長培)의 기록을 전재한 것이며, 1630년(인조 8)6월 9일 李忔이 북경에서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을 운구하여 다시 해로로 10월 18일 평양에 도착하기까지의 일이 적혀 있다.

 

<附錄>에는 斗巖書院創建時山丈題敎, 建院後奉安文, 春秋香祝文, 本官所奉祭需目錄, 淸陰金先生餞別詩, 玉笛房山記 등이 실려 있고 1899년(광무 3)에 본서를 출간하면서 붙인 후손 이규헌(李圭獻)과 이규석(李圭錫)의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丁卯胡亂(1627)에서 丙子胡亂(1636) 사이에 조선과 명의 외교관계, 명과 후금의 정세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17세기초의 해로와 항해술 수준을 확인하는 데에도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