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재의 무덤을 지나며[過寧齋墓]
지은이 : 황현(黃玹)
애통해라, 떠난 지 어언 일기라 / 一紀云亡慟
가을 산엔 이미 봉분이 낮아졌네 / 秋山已短墳
고도를 행하느라 자신조차 잊었으나 / 輕身行古道
사문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았었지 / 遺戀在斯文
갠 하늘엔 기러기 까마득히 날고 있고 / 杳杳晴空雁
먼 포구엔 구름이 아스라이 피어나네 / 荒荒極浦雲
홀로 누운 것 슬퍼할 리 없으리니 / 無庸悲獨臥
생시에도 이미 이군삭거(離群索居) 하였던걸 / 在日已離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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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고(己酉稿) : 1909년(융희3), 매천이 55세이던 해에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영재(寧齋) :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호이다.
자는 봉조(鳳朝) 또는 봉조(鳳藻)이고, 호는 영재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866년(고종3) 15세의 어린 나이로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으며, 187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문명을 떨쳤다. 하곡(荷谷) 정제두(鄭齊斗)가 세운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전승자였으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전사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조부 시원(是遠)의 영향으로 척양(斥洋)과 척왜(斥倭)를 주장하였다.
향리인 강화에서 은거하다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택영은 그를 고려와 조선의 문장가 9인 중의 하나로 선정하였다. 저서 《당의통략(黨議通略)》은 당파를 초월한 공정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집으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이 전한다.
◯일기(一紀) : 12년을 달리 표현하는 말인데, 보통 10여 년 정도를 가리킨다.
◯이군삭거(離群索居) :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유익한 사우(師友)들의 곁을 떠나
혼자 외로이 지내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子夏)가 아들을 여의고 상심하여 실명(失明)을 하였을 때, 하늘이 죄 없는 자신에게 불행을 주었다고 원망을 하였는데, 조문을 왔던 증자(曾子)가 그의 잘못을 꾸짖으니, 자하는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 산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다.”라고 뉘우쳤다고 한다.
↑묘표도 없는 문화재 지정(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9호) 이건창 선생 묘.
앞에서 바라본 전경
↑묘의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665-27(시도기념물 제29호)
뒤에서 바라본 전경
김택영은 그를 고려와 조선을 통털어 문장가 9인 중의 한사람으로 선정한 인물이지만 이건창(李建昌)의 무덤엔 상석 하나없이 초라하게 보존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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