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ㅣ 2013년 10월 03일(목)
[사필귀정] 공약 후퇴와 대통령의 리더십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67%에서 60%로 7%포인트 하락했다. 이전에 지지율 변동이 별로 없던 때에 비하면 하락 폭이 큰 편이다. 이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기초연금 후퇴 등 공약 실천이 미흡하거나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25%, 소통 부족`국정 운영의 불투명성을 지적한 부분이 13%를 차지했다.
기초연금 공약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가 소득 하위 70%의 노인으로 지급 대상을 줄이면서 국민연금과 연계해 10만~20만 원을 차등 지급하기로 후퇴했다.
여론이 들끓자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하고 노인들에게 거듭 사과 의사를 밝혔다. 사과를 하긴 했지만, 핵심 공약의 중요성과 노인층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도 해당된다는 점에 비추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
공약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대폭 축소된 채 입법 예고되는 등 경제민주화 공약이 주저앉고 있고 대학 반값 등록금 예산이 많이 줄어들거나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전혀 확보되지 못하는 등 교육 공약도 쪼그라들었다.
박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와의 회동에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경제민주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교육 공약 후퇴에 대해선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정치적 성공을 이어온 박 대통령이 집권 7개월 만에 주요 공약들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약을 100% 지키긴 어렵더라도 공약 이행에 온 힘을 다하고 나서 힘에 부치면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성의와 노력을 보이는 과정도 거의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핵심 공약들이 축소되거나 외면당하는 것을 보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맞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우며 앞으로는 쓸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약 축소 과정에서 빚어진 불협화음은 대통령의 다른 약속과 리더십을 되돌아보게 한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수정안에 반대해 사퇴한 것은 대통령이 내건 ‘책임 장관제’가 실종됐음을 의미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대통령의 뜻을 좇기에 바빠 ‘책임 총리제’ 역시 물 건너갔다.
주무부서가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해 기초연금 안을 만들어 청와대가 내각 위에 군림하고 있다.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정치 공작 전력이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들어선 이후 이러한 양상이 커져 우려스럽다. 흠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는 인사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자주 낳는다.
야당과 대화하면서 국민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다짐도 했었나 싶다. 박 대통령은 3자 회동에서 야당 대표의 요구를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으며 이후 야당에 날 선 발언을 이어나갔다. 장외투쟁을 하는 야당이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억지스러운 발언도 했다. ‘국민적 저항’은 언제나 국가권력을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용법이 틀렸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긴 했어도 60%대 지지율은 높은 편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과정에서 빚어진 청와대 음모설, 외압설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계층이 일정하게 존재하고 대선 개입 의혹이나 검찰총장 사퇴 논란이 민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직 집권 초기이고 민생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이전의 시점에서 대통령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불안 요소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개혁과 검찰 개혁 및 중립 등은 필수적으로 연계돼 있다. 주요 공약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 개선 여부는 정권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이다.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절실하나 대통령은 포용력이 부족해 독선적이고 불통적이어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나 총리, 장관들도 소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金知奭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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