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시대 생활상

주막(酒幕)

야촌(1) 2013. 9. 8. 16:22

■ 주막(酒幕)  

 

주막의 기능은 다양하여 식당과 주점, 여관의 기능을 겸비하고, 아울러 상업적 거래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여러 지방 사람들이 드나드는 관계로 각 지방의 소식과 문물을 교류하는 문화적 기능도 겸비하였다.

 

이러한 주막은 이용자에 따라 시설의 차이가 있었는데. 양반이나 관리, 부상(負商=등에 물건을 메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이 이용하는 곳은 여러 칸의 가옥과 부엌이 설치되었으며 마방(馬房="마구간"의 방언)이 딸려 있었다.

 

널찍한 마루와 평상(平床), 그리고 손님이 많으면 멍석을 깔아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과 술도 이용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반면에 일반 백성이나 가난한 자들이 이용하는 주막은 초가 두칸이거나 비를 막을 초가 지붕과 노천 아궁이가 있는 정도였다.

 

조선후기 도회지의 주막에서는 국밥이나 국수가 메뉴의 전부였고 술도 탁주가 주종이었다. 

간단한 요기 거리로 국수가 인기였는데, 국수집은 연꼬리같은 종이를 원형으로 굽힌 대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 표시하였다. 나그네는 타고 왔거나 짐을 실은 말을 나무에 묶어 두고 서둘러 국밥이나 국수 한 그릇을 땅바닦에서 먹는 모습이 일상적인 주막의 풍경이었다.

 

때로는 주막에서 식사제공을 하지 못해 여행자가 직접 쌀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주막들도 있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강원도 춘천에 돈을 빌리러 갈 때 한양에서 쌀을 준비해 가기도 하였는데, 이를 보면 주막이라고 모두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막은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하층민이 이용하는 주막은 도박꾼과 강도의 소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죄인 색출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주막은 술과 밥을 팔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여인숙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음식과 술을 사먹고 잠을 자는 곳이라 별도로 방값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막은 나그네가 잠시 쉬어간다고 하여 봉놋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원래 주막은 교통로를 중심으로 위치하기도 했으나 상품유통이 활발해진 후로는 5일장을 중심으로 주막집이 위치하였다. 5일장은 초하루, 초엿새 혹은 초사흘, 초여드레 그리고 초이틀, 초칠일식으로 달마다 일정하게 서는 장을 말한다.

 

 

옛 주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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