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신은 군주가 만든다.
고금을 막론하고 간신으로 낙인찍히는 것 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자손 대대로 수치심을 안고 살아야 한다. 간신이 그처럼 미움을 받는 이유는 반드시 자신이 속한 조직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든, 유능한 사람을 모함하는 방식이든, 결과적으로 조직에 도움이 될 일은 없다. 간신들은 대체로 악인이다. 그러나 악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간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속에 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런 마음을 함부로 부릴 기회가 없으면 간신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간신은 드러난 자취가 있어야만 판정할 수 있다. 사람을 채용할 때, 악인을 막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간신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군주가 사람을 대하고 말을 할 때에는 그 단서가 심히 미미하더라도 그 영향은 매우 뚜렷합니다. 만일 간언을 싫어하는 기미가 있으면 임금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다투어 술수를 부려 모두 성상의 총명을 현혹시키려고 할 것이요,
정직하고 성실해서 과감히 말하는 자들은 말을 다할 수가 없어서 오직 몸을 사려 멀리 물러갈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자들이 물러나고, 아첨하는 자들이 등용된다면 조정이 입을 폐해를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화란의 발흥이 언제나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옛 군주 중에 누군들 태평과 안정을 바라고 혼란과 멸망을 싫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끝내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못하고 혼란과 멸망에 이르렀던 것은 현자들을 의심하고 자기 생각만을 썼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있으면 직언을 가지고 자신을 배척한다고 여기고, 자기 생각을 쓰면 남의 말을 싫어하여 듣지 않습니다. 군자는 직언을 다하므로 소원하게 대하고 소인은 자신의 뜻에 맞추므로 기뻐합니다.
이른바 소인들은 또 동류(同類)를 끌어와서 선한 사람들을 배척하며, 군주가 기뻐하고 노하는지 눈치를 보아서 기쁨을 틈타 유인하고 노여움을 계기로 격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조정 상하 간에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마침내는 국가가 위태롭고 멸망하는 화가 닥쳐도 구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原文]
大抵人主待人發言之際。其端甚微。而其應甚著。若有厭聞之端。則謟諛承順者。爭逞其術。皆欲錮惑聖聰。直諒敢言者。不能盡言。惟思奉身遠退直諒者退。謟諛者進。則朝廷之害。可勝言哉禍亂之興。未必不由於是。古之人君。孰不欲治安而惡亂亡也。終不能治而卒底于亂且亡者。有疑心與自用故也。有疑心則以直言爲斥已。有自用則厭人言而莫聞。君子盡言故疏之。小人承順故悅之。所謂小人者。又引進群類。排斥善人。窺伺人主喜怒之端。粟喜而誘之。因怒而激之。朝廷上下。意思不通。則終有危亡之禍而莫之救。
-기대승(奇大升, 1527~1572), 「4월 초5일」,『고봉집(高峯集) 논사록(論思錄)』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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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글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의 『논사록』에 나오는 말이다. 마침 어떤 일로 인해 간언을 올린 사간원 관원에게 선조가 “실제가 없는 말을 전하니, 미쳤다고 하겠다.”는 말을 하며 배척하자, 고봉이 경계한 것이다.
『논사록』은 고봉이 경연(經筵)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스승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임금을 계도하는 일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죽자, 선조는 곧바로 그가 평소 경연에서 논했던 말들을 모아 책으로 엮게 하였다.
선조가 그의 정밀하고 박학한 의론에 얼마나 깊이 경도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통틀어서 간신이라고 말하지만, 한(漢)나라의 석학인 유향(劉向)은 이를 여섯 가지 사악한 신하로 분류하고 있다.
그저 눈치를 살피며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
군주의 언행에 대해서 한없이 칭찬하며 비위를 맞추는 유신(諛臣),
어진 이를 질투하여 등용을 방해하고 상벌(賞罰)이 교란되게 만드는 간신(姦臣),
교묘한 말재주로 본질을 흐리고 남을 이간질하는 참신(讒臣),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추구하는 적신(賊臣),
붕당을 지어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뒤로는 임금을 욕하고 다니는 망국신(亡國臣)
면면을 보면 이런 부류의 간신이 한 명만 득세하더라도, 작게는 임금, 크게는 그 나라를 망치고도 남을 만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조정에 이런 간신들이 득세하였던 것은 아니다. 악인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간신이 발호한 시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왜 그렇겠는가? 소인배와 간신배가 득세할 수 있는 환경을 임금이 제공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달랐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에,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고 하였다. 어느 조정이든 아랫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조직 내에서 포부를 펼 수 없다.
아니, 포부는 고사하고 버티기조차 힘들다. 오죽하면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을까?
“오나라 왕이 검객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칼에 베인 상처가 많고[吳王好劍客 百姓多瘡瘢],
초나라 왕이 호리호리한 허리를 좋아하면 궁중에는 굶어 죽는여자가 많다. [楚王好細腰 宮中多餓死]”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임금이 좋은 말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면, 자연히 신하들은 아첨하는 간신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엄하게 막는다면, 내면에 간신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비집고 나오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습관적으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것이다[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공자(孔子)는 이 동요(童謠)를 들으면서 말했다.
“물이 맑으면 숭상하는 갓끈이 들어오고, 흐리면 천시하는 발이 들어온다. 모든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글쓴이 : 권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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