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묘(省墓)
省(살필 성) 이란 우리의 선조들이 만든 한자의 조상글인 갑골문자에는 “눈썹을 찡그리고 사물을 살핀다”는 상형의 글이다.
墓(무덤 묘)란 글자는 갑골문자 (莫) 에서는 풀이나 초목 아래위에 태양이 들어가는 자형으로 “해가 진다” “해가 떨어진다” “어둡다” 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흙( 土/?)이 있어 흙아래로 “떨어진다”, “진다”, “어둡다”는 의미로 곧 “죽은 이를 흙아래(어둠)에 뭍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우리가 현세에 쓰는 “무덤[墓]” 이라는 말도
곧 “무덤”의 첫 글자인 “무”라는 말은 “뭍는다”는 말이고,
“덤”은 “바위”나 “흙무더기”를 말하는 우리의 옛글에서 왔다.
그래서 무덤은 “뭍은 바위” 또는 “뭍은 흙무더기”를 말한다.
갑골문자를 전혀 보지 못했던 (破字/파자) 사람들은 “살핀다는 “省”자를 少(적을 소)+目(눈 목)으로 보았다. 그리고 “묘/墓”는 莫(없을 막)이란 글자 아래 위에 ++(풀 초)+日(해 일)+大(큰 대) 곧 풀속으로 서산의 해가져 큰 해의 모습이 없다 는 뜻으로 재멋대로 풀이하고 더하여 土(흙 토)는 땅에 싹난 모습이 흙이라고 아무런 문헌참고도 없이 인터넷이 떠돌아 다니고... 이를 본 누리꾼들이 잘못된 지식을 퍼날라 대면서 성묘의 진실됨을 오염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는 우리의 먼 조상인 은나라 조상들이 만들 글자이다. 한마디로 한자의 조상 글을 만든 장본인 들이다. 漢字는 漢代의 글자를 한자라 불렀다. 특히 지금의 한자는 갑골문의 형성된 자형을 재대로 모르고서 어원을 맘대로 끌여 들인다면 무지의 소치일 분만 아니라 학자로서 양심과 자질이 없는 일천한 사람으로 타락될 것이다.
일년에 성묘는 4번 했다.
입춘이 되면 겨울내 풀에 몸을 숨긴 벌레들이 알을 깔 시기이다. 이때가 설날 명절 전후가 되는데 각 농가마다 벌레의 번식을 막기 위해 논 밭두렁을 태운다. 간혹 불길이 묘에 옮겨 붙어 산소를 태우는 경우가 있다. 이 시기에 첫번째 성묘를 한다. 그리고 입춘이 지나 한식이 되면 새로 쓴 묘역에 사초나 잔듸(때)를 입히거나 묘역을 보수하는 기간이다.
이 역시 두번째 성묘이다. 한식을 지내면 추석 성묘이다. 추석 성묘는 추석이 들기 앞달에 한다. 이 때가 처서의 전후 시기가 되는데 산야의 잡풀은 처서가 되면 잎이 마르고 씨앗이 영그는 때이다. 씨앗이 영글어 떨어지기 전에 잡풀을 베어 낸 것이다.
이를 두고 벌초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세번째 성묘이다. 그리고 시월 보름에 묘제를 지내는 것이 마지막 일년의 네번째 성묘이다. 성묘는 묘를 살핀다는 말이다. 금초나 벌초도 큰 의미로는 성묘에 포함되고 있다. 물론 묘역에 연고가 있으면 관리 보수도 겸하지만 조상의 묘는 가능한 한식과 손이 없는 날을 택해서 했다.
금초란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 일년 중 봄에 불길의 피해는 없는지 묘소를 살피고 잡풀을 밴다는 말이다. 무덤에 불이 나면 조상에 대한 욕보임은 물론 그 후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莎草/사초라는 말은 성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초는 풀이름이다. 고례에는 지금의 잔듸(때) 대신에 사초를 심었다.
예제는 사람의 슬퍼하는 심정을 감쇄시켜 어느 한계로 억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것이 있고, 또 하나는 슬퍼할 줄 모르는 불초한 자의 심정을 자극하여 슬픈 마음을 흥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것이 있다. 사실은 귀신이 와서 흠향하는 것을 본사람을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상고시대부터 이 제전을 폐지하지 않았다.
이러한 제전의 하나인 성묘가 어떻게 생각하면 무의미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이를 통해서 보본반시의 생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 보본반시의 기풍이 바로 사회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교화인 것이다.
경계하고 버려져야 될 伐草/벌초
벌초란 말 대신에 경전에서는 "역묘(易墓)"라는 단어가 이미 나와 있다.이 말을 현세 우리는 단지 모르고 안 쓸 뿐이다.
공자는 역묘란 "易墓 非古也"라 했다. 易墓란?
묘역의 풀과 나무를 베어서 거칠어지지 못하도록 다스리는 것은 옛법이 아니라고 주석했다.
더 쉽게 풀이하면 이 말은 본뜻은 옛날에는 묘지를 만들면 묘역 주위에 난 초목을 베어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묘지를 정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옛날이란 은나라 이전을 말한다. 그리고 은나라 이전에는 아예 봉분이 없었다.(孔穎達疏: 殷以前墓而不墳是不治易也)
옛날 은나라 이전에는 매장만 하고 봉분은 하지 않았으며 묘역의 잡초나 나무들을 베거나 해서 거칠어지지 않도록 다스리는 일도 없었다. 단지 상에는 지극히 슬퍼하고 제사에는 지극히 공경하는 것이 고례의 풍습이었다. 슬퍼하고 공경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예의 근본인 것이다.
예라는 것에는 두가지 형식과 근본이 있다. 두가지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근본보다 형식에 치우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공자는 그 근본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 것이다.
벌초란 말은 중국한어대사전이나 일본한화대사전이나 한국 한한대사전에는 그 말이 없다. 곧 방대한 50만 어휘를 수록했던 동남아 삼국에서 대사전류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예전부터 사용했던 어휘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伐이란? 치다 찌르다 베다 자르다 두드리다 떼어내다 없애다 제거하다 병을 고치다 치료하다 무너뜨리다 허물어버리다 공박하다 비평하다 뽐내다 모순되다 방패 벌하다 처벌하다 문벌......등 으로 사용된다. 곧 벌은 갑골문자에서 무기로 사람의 목을 치는 자형이다.
이런 살벌한 말뜻의 글자를 조상의 무덤을 살피는 성묘 때에 풀을 단장하는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과 글은 반드시 연고가 있다. 단지 그 깊은 뜻을 비천하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나깨나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도 이런 경전공부를 가르켜 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옛 전적을 찾아 볼 뿐이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벗으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 옛 현인들의 충고였다. 그래서 경전이나 사전에도 안 나오는 벌초라는 말을 삼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한대사전/한화대사전/한어대사전/예기/예기집설/예기독본/서경/동국세시기
글쓴이 : 土民 樹雨 (判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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