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成宗 82卷 8年 7月 21日 (丙戌) 004 / 임사홍과 석전 친행 후의 대사례·문묘에 배향한 제철의 증감에 대해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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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우승지(右承旨) 임사홍(任士洪)이 아뢰기를,“오는 8월은 석전(釋奠)을 친행(親行)한 뒤에 대사례(大射禮=조선시대, 임금이 성균관에 거둥하여 옛 성인에게 제사를 올리고 활을 쏘던 예식)를 행하시는데, 이는 진실로 대사(大事)입니다.
조종조(祖宗朝)에서는 석전(釋奠)을 행하면, 제사를 마치고 명륜당(明倫堂)에 좌정하여, 스승과 생도가 읍양(揖讓)하는 예(禮)를 행하는 것이 예(禮)이었습니다마는, 만약 사례(射禮)를 행한다면 그 선후(先後)의 차서를 미리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조종조(祖宗朝)의 시학(視學)은 반드시 선비를 뽑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에 선비를 뽑으면 반드시 요행의 폐단이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가?”하였다. 임사홍이 대답하기를,“진실로 요행(僥倖)을 바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어찌 뜻있는 선비가 기국(器局)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자가 없겠습니까?
선비를 뽑는 것은 많음을 취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단지 2, 3인만 뽑는 것이 족합니다. 정한 시각에 부(賦)·표(表)를 짓는 것도 또한 그 사람의 재주가 있고 없음을 알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예조(禮曹)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라.”하였다.
임사홍이 또 아뢰기를,“대사례(大射禮)는 진실로 제왕(帝王)의 성대한 일이므로 그 주선(周旋) 동정(動靜)으로써 그 덕행(德行)을 관찰합니다. 이러므로 전모(典謨)에도 또한 후(侯)로써 현우(賢愚)를 밝힌다는 말이 있으며, 옛 말[古語]에도 제사(祭祀)가 있을때에는 미리 교외(郊外)에서 활을 쏘며, 그 동정(動靜)과 과녁 맞추는 것을 보아, 집사(執事)를 기용한다고 하였으니, 그 일을 중히 여기어 임금 이하로부터 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예전에도 임금이 친사(親射)함이 있었는가?”하매, 임사홍이 말하기를,“한(漢)·위(魏)·남북조(南北朝)와 조송(趙宋)의 인군이 많이 친사(親射)하였습니다.”하고, 또 말하기를,“지난 번에 한 서책을 중국에서 얻었더니,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한 제철(諸哲)을 증감(增減)한 것에, 채침(蔡沈)·진덕수(眞德秀)·호안국(胡安國)은 바로 더 들인 자이니, 주문사(奏聞使)의 행차에 듣고 보기에 어떻겠습니까?
또 우리 나라에서 문묘에 들어간 자는 최치원(崔致遠)· 안향(安珦)· 설총(薛聰)뿐입니다. 그 뒤에 이제현(李齊賢)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권근(權近)은 모두 우리 나라 사람으로 어진이입니다. 정몽주는 진실로 이의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이제현의 학문이 과연 순정(純正=순수하고 올바르다)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색은 근래에 많이 의논하는 자가 있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이색은 부처를 섬긴 자이니, 어찌 문묘(文廟)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하였다.[원전] 9 집 480 면[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原文]
成宗 82卷 8年 7月 21日 (丙戌) 004 / 임사홍과 석전 친행 후의 대사례·문묘에 배향한 제철의 증감에 대해 논의하다.
○御夕講。 右承旨任士洪啓曰 : “來八月親行釋奠後行大射禮, 此固大事。 祖宗朝行釋奠, 則祭畢坐明倫堂, 視師生讓揖之禮例也。 若行射禮, 則其先後之序, 不可不預爲講究矣。” 上曰: “祖宗朝, 視學則必取士。 然人言取士則必有僥倖之弊何如?” 士洪對曰 : “誠有僥倖者。 然其間豈無有志之士藏器待時者乎? 取士不欲其多, 其取二三人足矣。 燭刻製賦表, 亦知其人之才不才也。” 上曰 : “令禮曹議之。” 士洪又啓曰 : “大射之禮, 誠帝王盛事, 以其周旋動靜而觀其德行也。 是以典謨亦有 ‘侯以明之’ 之語。 古語有祭之時預射於郊外, 而觀其動靜中鵠, 與於執事, 重其事也, 自君以下, 莫不射焉。” 上曰: “古有人君親射乎?” 士洪曰 : “漢、魏、南北朝、趙宋之君, 多有親射。” 又曰: “往者得一書於中朝, 增減配享諸哲, 蔡沈、眞德秀、胡安國, 乃增入者也, 奏聞使之行, 聞見何如? 我國入文廟者, 崔致遠、安珦、薛聰而已。 其後李齊賢、鄭夢周、李穡、權近, 皆東人之賢者也。 夢周則誠無間, 然未知齊賢之學, 果純正否。 穡近多有議之者矣。” 上曰 : “李穡, 侫佛者也, 安可入文廟乎?” <끝>
성종 8년 정유(1477) 7월 21일(병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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