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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야촌(1) 2010. 3. 17. 19:53

■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동인지문오칠(보물 제1089호) / 소장처 : 서울 종로구(삼성출판박물관)

 

이 책은 고려 후기의 문인 최해『崔瀣, 1287(충렬왕 13∼1340(충혜왕 복위 1)』 선생이 고려시대 선비들의 뛰어난 시문을 뽑아서 펴낸 시선집인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가운데 남아있는 권 7∼9이다.

 

최해(崔瀣)는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책을 쓰는데 힘써『동인지문(東人之文)』외에도 문집으로 『졸고천백(拙藁千百)』2책을 남겼다.

 

「동인지문(東人之文)」은 최해(崔瀣)의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에서 "신라(新羅) 최고운(崔孤雲)에서 시작하여 충열왕(忠烈王) 때에 이르기까지 무릇 명가(名家)에게서 시(詩) 약간수(若干首)를 얻어 제명(題名)하기를 '오칠(五七)'이라 하고 문(文) 약간수(若干首)를 얻어 제명 '천백(千百)'이라 하고 병려문(騈儷文) 약간수(若干首)를 얻어 제명(題名)하기를 '사육(四六)'이라 하고 총괄(總括)하여 그 제목(題目)을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동문사육서(東門四六序)'에서는 "후지원무인(後至元戊寅) 여름에 내가 동문사육(東門四六)의 집정(集政)을 완성(完成)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이곡(李穀)의 소찬(所撰) 최해(崔瀣) 묘지명(墓誌銘)에는, "일찌기 본국(本國) 명현(名賢)의 저술(著述)을 선집(選集)하고 그 제목을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하였는데 모두 25권(卷)이다"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동인지문(東人之文)의 편차(編次)는 '오칠(五七)' '천백(千百)' '사육(四六)'의 순(順)으로 구성(構成)되었음이 확인(確認)되고 총 권수는 25권(卷)임을 알 수 있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과 천백(千百)은 아직까지 발표(發表)된 바가 없고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은 보물(寶物) 710, 711, 712, 713, 714로 이미 각각 지정되어 전질(全帙)이 15권임이 확인되었고, 소장처(所藏處)는 다르나 이 완질(完帙)을 고증(考證)할 수 있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은 9권인데 사육(四六) 15권(卷)을 합하여 24권(卷)이 된다. 나머지 1권은 천백(千百)으로 추정된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은 신라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고려 충렬왕 때의 오한경(吳漢卿), 홍간(洪侃) 등 시인들의 오언시와 칠언시를 선집하고, 비교와 해설을 붙여 고려말에 간행한 것이다.

 

이 『동인지문오칠』은 완질이 아니고 현재 남아있는 것도 전·후반부가 없어진 것이 있기는 하나,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오칠」의 구성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려판각본으로서 고려문인의 시가 수록되어있는 만큼 문헌학, 한문학 연구의 자료이며, 인물에 대한 전기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