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竹林七賢)
삼국시대(三國時代) 말부터 서진(西晉) 초기(3세기 중엽)에 중국에서 관료(官僚) 세계를 떠나 전원(田園)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즐긴 7명의 은자(隱者)를 말한다.
그들은 때때로 낙양[洛陽] 북쪽의 한 대나무 숲에 모여 시(詩)를 짓고 거문고를 타면서 단약(丹藥)을 만들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또한 청담(淸談-속되지 않은 고상한 이야기)이라고 하는 독특(獨特)한 담론을 전개한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청담은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자아의 해방과 개성적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擁護)한 것으로 그 주제는 주로 도가(道家)를 중심으로 한 현학(玄學)에 속하는 것이었다.
7현 가운데에서도 자유사상가이며 매우 탁월한 시인인 완적(阮籍, 210~263)이 대표적 인물이다. 상수(向秀, 230~280)는 곽상(郭象)과 함께 초기 도가서인 장자(莊子)에 신도가(新道家) 경향의 주석을 단 장자주(莊子注)를 썼다.
그밖에 시인인 유령(劉伶, 225~280), 음악가인 완함(阮咸), 독실한 도가인 산도(山濤)· 왕융(王戎)이 있었다. 오늘날 산동성[山東省] 남쪽에 해당하는 산양(山陽)의 자기 고향에서 죽림칠현을 이끌었던 사람은 뛰어난 사상가이며 연단술(煙丹術)에도 일가견이 있던 혜강(嵆康 224-263)이었다.
그는 타협(妥協)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사마소(司馬昭)의 심복에게 미움을 받다가 모함(謀陷)을 당해 끝내 처형(處刑)되었다. 은둔(隱遁)생활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감(壓迫感)이 7현과 그 시대의 다른 은둔시인들의 글에 나타난다.
이들의 시와 수필에는 흔히 학자가 관리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과 시골생활의 기쁨과 고난(苦難)에 찬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또한 부득이한 경우에는 우회적인 수법으로 정부를 비판한 내용도 약간 들어 있다. 칠현의 은둔생활은 그뒤 어수선한 시대의 중국 작가들에게 처세의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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