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고려사(高麗史)

삼국유사 발문(跋文) - 慶州府尹 李繼福

야촌(1) 2006. 11. 20. 21:27

이계복(李繼福)의 삼국유사 발문(跋文)


우리 동방 삼국(三國)의 본사(本史)나 유사(遺事) 두 책이 딴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에만 있었다.  세월이 오래 되매 완결(완缺)되어 한 줄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겨우 4, 5 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여러 역사책을 두루 보고 천하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 그리고 모든 이상한 사적에 대해서 오히려 그 견식을 넓히려 하는 것인데,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일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에 이 책을 다시 간행하려 하여 완본(完本)을 널리 구하기를 몇 해가 되어도 이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이 이 책이 세상에 드물게 유포되어 사람들이 쉽게 얻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지금 이것을 고쳐 간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실전(失傳)되어 동방의 지나간 역사를 후학(後學)들이 마침내 들어 알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실로 탄식할 일이다.

 

다행히 사문(斯文) 성주목사(星州牧使) 권공(權公) 주(輳)가, 내가 이 책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완본(完本)을 구해 얻어서 나에게 보냈다. 

나는 이것을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상국(安相國) 당(당)과 도사(都事) 박후전(朴候佺)에게 이 소식을 자세히 알렸더니 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이에 이것을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간행시켜서 본부(本府)에 갖다가 간직해 두게 했다.
아아! 물건이란 오래 되면 반드시 폐해지고 폐해지면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일어났다가 폐해지고 폐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치의 떳떳한 바이다. 

이치의 떳떳함으로 일어날 때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전하는 것을 영구하게 해서 또한 후세의 배우는 자들에게 배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황명(皇明) 정덕(正德) 임신(任申) 계동(季冬)에 부윤(府尹)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주진병마절제사(慶州鎭兵馬節制使) 전평군(全平君) 이계복(李繼福)은 삼가 발문을 씀.

 

*황명(皇明)은, 명나라를 일컫는 말로, 정덕(正德은, 명(明)나라 시대에 쓰였던 연호이다. 연대는 1506-1521)이고,  임신(任申)은 1512) 섣달[季冬, 11월]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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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편찬자는 김부식(1075~1151)으로 이 당시 고려사회는 지배 계급이 내부의 분쟁과 묘청의 난이 일어난 시기로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난 시기였다. 

 

김부식은 이 시기에 지배층을 대변하는 정치. 군사. 전문가로써 20여권의 저서가 있고 예종실록을 편찬도 하였다. 

삼국사기가 편찬되어 많이 유포되었으나 송나라의 왕응린에 의하면 순회 원년 비각에 수상한 사실도 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간행본이 없어지고 사본도 보잘 것 없어서 1394년 이태조 3년에 경주부사 김거두에 의해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 되었고 김거두의 발문이 붙은 삼국사기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후 삼국사기는 1512년 중종 7년 경주부사 이제복에 의해서 다시 간행 되었는데 이 판본을 정덕본이라고 한다.

정덕본은 김거두의 목판본이 오래되어서 없어진 글자가 많아 다시 개편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