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중국의 민족신회

야촌(1) 2010. 7. 4. 16:16

■중국의 민족 신화

 

헌원(軒轅)은 묘족. 리족. 흐몽족의 조상인 치우(蚩尤)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었다. 묘족은 양쯔강과 황하강에서 벼농사를 하다가 한족의 남하에 따라 남쪽으로 쫓겨난 민족이다. 묘족의 역사는 한족 못지않게 오래되어 자손이 많은데, 한족화 되어 구분이 어렵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 흩어져서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체 살고 있다.

 

중국 과학원 소속 유전연구소 인류유전자 연구센트가 1910년 5월 26일 15년 동안 연구를 진행한 중국인의 성씨와 유전자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고 발표 하였다.

 

푸젠성[福建省]과 장시성[江西省]에 걸쳐 거주하는 한족은 묘족. 백족등 소수 민족보다 중원의 한족과 유전적 차이점이 크다고 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인이 황제의 자손이라는 사마천(司馬遷-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BC 145~?BC 86). )의 신화는 해체된다.

 

오제시대 하나라는 현제 까지 구체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실존성이 고증되지 않았다. 맹자의 경우 오제(五帝-고대 중국의 다섯성군. 곧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을 이른다. 

 

《사기(史記)》에서는 소호 대신 황제(黃帝)를 꼽는다)의 부계가 일치 한다고 보지 않았고, 주나라 사람들이 서이[西夷-중국에서, 한인(漢人)이 서쪽 변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라면서 본래 중원에 살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춘추시대 제후국은 희성 제후국과 희성이 아닌 제후국으로 분류되는데, 그들 간에는 동족 의식이 없었다. 주대 한족. 초한쟁패기 한. 서초는 진왕조를 비한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사마천은 한나라의 관료로서 진나라에 부정적이었는데, 진왕조도 헌원의 후예라고 우회적으로 서술하였다. 아마도 진왕조가 헌원의 가계가 되지 않으면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 통일했다는 이론이 성립하는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징기스칸을 헌원의 후예라거나, 또는 본래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중국 일각에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황제의 자손으로 족보를 만들면 황제의 자손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고 때때로 중화민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황제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자신의 가문을 포장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족보를 날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황제라는 개념은 거의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집단최면, 또는 강박증 같은 것으로 황제의 자손이어야 자신의 가문이 높아진다는 의식이 바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