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文公, BC 697 ?~BC 628)
중국 춘추시대의 5패(五覇)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의 군주(재위 BC 635∼BC 628)로, 주나라 양왕을 복위시키고, 초나라의 세력을 부수었다. 전후 제후들과 동맹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춘추시대 제2의 패자가 되었다.
그의 이름 중이(重耳)로, 아버지 헌공(獻公)에게는 총비(寵妃)가 많았고, 그 중에서도 여융(驪戎)을 토벌하고 잡아온 여비(驪妃)를 특히 사랑하여 여비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후계자로 삼고자 태자 신생(申生)을 죽이고, 중이와 그의 아우 이오(夷吾)를 추방하였다.
중이는 적(狄)으로 도망하여, 국외에서 19년을 지내다가 의형(義兄)이 되는 진(秦)의 목공(穆公)의 원조로 진(晉)으로 돌아와 62세에 즉위하였다.
문공은 오랜 방랑생활에 따라다니던 호언(狐偃), 조쇠(趙衰), 가타(賈橓), 선진(先軫) 등의 현사(賢士)들을 중용하였고, 그들의 건책(建策)에 따라, 당시 왕실의 내란으로 정(鄭)나라로 망명한 주(周)나라의 양왕(襄王)을 도와 난을 평정하고 양왕을 복위시켰다.
이어서 송(宋)나라의 원조요청을 받아들여 군제(軍制)를 정비하고 북진을 노리는 초(楚)나라의 세력을 허난성[河南省]에 있는 성복(城플)전투(BC 632)에서 크게 부수고, 전후(戰後)에 천토(踐土:河南省)에서 주나라의 양왕을 맞아 제후들과 동맹을 만들었다(BC 632). 그리하여 진(晉)의 문공은 제(齊)의 환공(桓公)에 이어서 춘추시대 제2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문공의 치세는 8년이었지만 신하에 현인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패업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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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자추(介子推, ?~公元前636年) - 진(晉)나라 文公의 신하
↑개자추(介子推)
춘추시대의 사람으로서 개지추(介之推)라고도 한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아버지 헌공(獻公)에게 추방되었을 때, 19년 동안 그를 모시며 같이 망명생활 하였다.
중이가 굶주리고 있을 적에 자기의 허벅지를 잘라서 끓여준 일도 있었다. 뒤에 문공이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주족(周旋)으로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고 많은 현신(賢臣)을 등용하였으나, 개자추 에게는 봉록(俸祿)을 주지 않았다.
실망한 그는 면산(緜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문공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다 불을 질렀다.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그대로 타 죽었다. 한식(寒食)은 개자추가 타 죽은 것을 기리기 위해 기념한 날로서, 이때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진문공(중이)는 19년의 모험중에 살해, 기아, 안주 등 다양한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와 제후
가 되었다. ⓒ신소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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