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동중서(董仲舒)

야촌(1) 2006. 5. 15. 17:54

■ 동중서『董仲舒, BC 179년경~BC 104년경』

 

▲동중서『董仲舒, BC 179년경~BC 104년경』

 

기원전(BC) 136년 유교를 중국의 국교이자 정치 철학의 토대(土臺)로 삼는데, 이바지한 철학자이다. 한(漢) 무제(武帝 : BC 140~87) 때의 재상(宰相)이었던 동중서는 조정에서 유학자가 아닌 학자들을 모조리 쫓아낼 것을 건의(建議)하여 유교(儒敎)가 한(漢)의 사상적 바탕이 되는 계기(契機)를 마련했다.
 
또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세울 것과 귀족과 지방관들에게 해마다 뛰어난 재능과 훌륭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을 추천하게 하여 관리로 임명하도록 제안했다. 

 

이러한 제도는 비록 출신은 비천(卑賤)하지만 능력(能力)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권력과 영향력(影響力)이 있는 지위를 보장(保障)해주는 관리등용제도인 과거제도의 토대가 되었다.

 

유교(儒敎)는 그 뒤로 2,000년 동안 국교(國敎) 지위를 유지(維持)해왔다. 동중서(董仲舒)는 철학자(哲學者)로서 유교철학과 음양철학(陰陽哲學)을 통합했다.

 

동중서(董仲舒)가 쓴 《춘추번로 春秋繁露》는 한 대(漢代)의 중요한 철학서(哲學書) 가운데 하나로 유교의 고전인 《춘추(春秋)》를 해석한 책이다. 공자가 편찬(編纂)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춘추(春秋)》는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에서 BC 722~48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술(記述)한 년대기(年代記)이다.

 

동중서(董仲舒)는 공자가 사건에 대하여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방식으로 사건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 참고(參考)해야 할 규칙(規則)도 이 책에 규정(規定)해놓았다고 생각했다. 

 

동중서의 말에 따르면 공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징후(徵候)와 전조(前兆)를 해석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