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동방삭(東方朔)

야촌(1) 2006. 5. 9. 17:37

■동방삭『東方朔 (BC154~93)』 / 三千甲子를 살았다는 익살의 文人

 

 

전한(前漢)의 제(齊)나라 태생. 무제(武帝)때의 문인으로. 字는 만천(曼倩). 기언기행(奇言奇行)으로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아 수십 년간 측근으로 있으면서 태중대부급사중(太中大夫給事中)까지 올랐다. 재산을 모두 미녀들에게 탕진했으며, 광인이라고 불렸다.


한때 부국강병책을 상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자조하여 《답객난(答客難)》·《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을 비롯한 약간의 시문을 남겼다. 한대(漢代)부터 그에게 황당한 글들을 가탁(假託)하는 것이 유행하여 지금도 《신이경(神異經》·《십주기(十洲記》가 그의 저서(著書)로 전해지지만 모두 진(晉) 이후의 위작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를 먹어 대단히 오래 살았다고 한다.

동방삭 설화(東方朔 說話)는 한국에서도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어왔다. 

 

한국의 경우 동방삭이 목숨을 연장하게 된 것은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기 때문으로 이야기된다. 

대접을 받은 저승사자는 삼십 갑자를 살게 되어 있는 동방삭의 수명을 삼천갑자로 고쳐주었다.

 

그러나 삼천갑자를 살고 난 동방삭이 붙잡히지 않자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아가기 위해 냇가에서 숯을 씻었다. 

어느 날 동방삭이 지나가다 숯을 씻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저승사자가 숯을 씻으면 하얗게 된다 해서 씻는다고 대답하자 동방삭은 자기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라고 말해 결국 자신이 동방삭임을 노출함으로써 잡혀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