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예양(豫襄)과 형가(荊軻)

야촌(1) 2005. 9. 2. 21:39

■ 예양(豫襄)과 형가(荊軻)

 

●예양(豫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춘추전국시대 진(晋)나라 자객(刺客)으로. 처음에는 범(范)씨를 섬기다가 중행(仲行)씨를 섬겼는데 중용(重用)되지 못했다. 뒤에 지백(智伯)을 섬겼고 지백은 예양을 총애(寵愛)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치려다가 조(趙), 한(韓), 위(魏)의 연합군(聯合軍)에 패망(敗亡)하여 죽고 지백의 땅은 조(趙), 한(韓). 위(魏)가 나누어가지고 지백의 해골은 조양자(趙襄子)가 옻칠을 해 요강으로 쓴다는 것을 알고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항상 비수를 품고 다녔다.

 

조양자(趙襄子)가 궁궐로 들어가 죽일 기회를 엿보았지만 들통이 났는데 조금도 겁내는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자기의 이름과 목적을 이야기 하니까 조양자(趙襄子)가 의인(義人)이라하고 풀어준다.

 

그 후 뒤에 다시 시도하다 또 들킨다. 조양자가 꾸짖고 죽이려 하니까 예양(豫襄)이 조양자의 옷이라도 찌르기를 청하여 그렇게 하고 자결한다.

 

『사위지기자사 , 여위열기자용(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뻐하는 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는 뜻)』.

『국사우지국사보지(國士遇之國士報之=국사로 대우하면 국사로 갚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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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가[荊軻, 미상 ~기원전 227년]

   위나라 사람으로 진왕[秦王: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刺客).

 

연(燕)나라 태자 단이 형가를 시켜서 진왕(秦王) 영을 죽이려 했다.

형가는 위나라 사람으로 유세로 등용하려 했는데 여의치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돌다 한단에서 노구천과 장기를 두다가 장기 규칙을 논하면서 다투게 되었는데 노구천이 성을 내며 노려보니 그곳을 나와 버렸다.

 

연(燕)나라에 온 형가(荊軻)는 개백장 고점리(高漸離)와 사귀었다. 고점리는 백정이었는데 축을 잘 연주하였다. 형가는신분의 차이는 상관하지 않고 사귀는데 고점리(高漸離)의 축을 들으면서 같이 춤도 추고 어울리곤 했다.

 

지식인이었던 형가는 연나라의 호걸들과 어울렸는데 태자 단에게 추천되어 그를 위해 진나라 영을 암살하는 명을 받고 떠나게 되는데 역수 가에서 친구 고점리가 타는 축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풍소소혜 역수한 장사일거혜 불복환(風蕭蕭兮 易水寒 壯士一去兮 不復還=바람은 쓸쓸한데 역수는 차갑고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결국 형가는 진(秦)나라로 가서 秦왕을 죽이려 했지만 실패한다.(BC2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