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白起, BC ~ 257) : 진(秦)나라 장수. 조(趙)나라와 장평에서 싸워 대승(大勝)함.
▲백기(白起, BC~257) 초상화
조(趙)나라 장수 염파(廉頗)는 백전노장(百戰老將)이라 서두르지 않고, 방비(防備)를 튼튼히 하고 진나라가 지치기만을 기다리는데 진(秦)나라 장수 백기(白起)는 군사비가 많이 들어 마냥 기다릴수만은 없다고 여겨 이간책을 쓰기로 한다.
‘염파(廉頗)는 늙고 겁이 많아 싸우려 하지 않는다. 진(秦)나라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조사의아들 조괄(趙括)이다.’라는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리게 했다.
조왕은 유언비어(流言蜚語)를 믿고 조괄(趙括)을 장수로 하여 염파를 대신하게 하였다.조괄은 젊어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병법(兵法)을 배워 자기를 당 할 자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버지 조사(趙奢)는 잘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연유(緣由)를 물으니 말하길‘ 전쟁은 사지(死地)다. 괄(括)은 그것을 쉽게 말하니 조(趙)나라에서 만약 그 에게 장수를 삼게 하면 趙나라 군사(軍士)는 괄(括) 때문에 깨질 것이다’라고 했다.
괄(括)의 어머니가 조(趙)왕을 만나 괄(括)을 장수(將帥)로 삼지 말라고 상소(上疏)하고 括의 아버지 조사(趙奢)의 말을 전(傳)했지만 趙王은 듣지 않고 조괄(趙括)을 장수(將帥)로 삼았다.
조나라가 군사 40만을 거느리고 진평에서 싸웠지만 백기(白起)의 계략에 말려들어 여지없이 무너져 괄(括)은죽고 군사40만명이 강복(降服)을 했지만 백기는 40만명을 생매장(生埋葬)해서 죽였다. 백기는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전쟁을 잘하는 장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병을 잘했으며 진(秦)의 소왕을 섬겼다. 진 소왕 13 년에 장수로서 한(韓)나라의 신성을 쳤다. 그 다음 해 한(韓), 위(魏)나라의 군대를 이궐에서 공격하여 머리 24만을 베고 또 장수 공손희(公孫喜)를 포로로 하였으며, 5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다음 해에 위나라를 쳐서 공략시키고 크고 작은 성 61 개소를 탈취하여(당시에는 큰 나라가 70개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백기는 자기의 공로를 믿다가 죄 없이 사형을 당했다.
"내 하늘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르는가?"하고는 한참 뒤에 말하기를,
"내 본래 죽어야 마땅할 것이다. 항복해 온 趙나라 군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죄다 구덩이에 생매장해 죽였으니, 이것으로 죽기에 넉넉하다." 고 하고 드디어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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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王翦』 : 진(秦)나라의 장수. 秦나라를 통일하는데 공이 컸다.
▲왕전 초상화
「가장 강한 초나라를 치기 위해」 왕전(王翦)은 군사 60 만의 장수가 되었으며 진시황(秦始皇)은 몸소 패상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왕진은 가면서 진시황에게 좋은 농토와 집을 많이 주기를 여러 번 청하였다. 진시황이 말했다.
"장군은 가시오. 어찌 가난함을 근심하오."
왕전((王翦)이 말했다.
"대왕께서 저를 신임하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농토를 청하여 자손의 기업으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시황은 크게 웃고 말았다. 왕진이 국경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보내어 좋은 농토 주기를 청구한 것이 다섯 번이나 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 임금에게 청하는 것이 너무 심합니다."
왕전(王翦)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저 진(秦)왕은 조포(粗暴)하여 남을 믿지 않는다.
지금 나라를 텅 비우면서 진(秦)나라의 모든 무장군인을 나에게 위임(委任)하였다.
내가 많은 토지(土地)를 청(請)하여 자손의 기업을 삼아 자신의 신변을 견고(堅固)하게 하는 것을 보여주고 나에게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도리어 진(秦)왕은 나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같이 주도면밀(周到綿密)한 사람이 출전한 전쟁에 패할 리가 없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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