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정의공주 묘(貞懿公主 墓)/세종의 2녀

야촌(1) 2008. 9. 15. 02:25

 

 

↑소재지: 도봉구 방학동 산63번지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남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신도비

 

◈교통이용편

 

1, 4호선 창동역 1번 출구에서 1161, 1144번 버스 이용 정의공주묘 하차.

2. 4호선 쌍문역 2번출구 130번 버스 이용 정의공주묘 하차.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년(태종 15)∼1477년(성종 8). 세종(世宗)의 둘째 딸로 어머니는 소현왕후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안맹담은 1462년(세조 8)에 죽었다.

 

1469년(예종 1)에 정의공주(貞懿公主)는 남편인 안맹담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상‧중‧하를 간행하였다. 이책은 보물 966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정의공주와 안맹담의 묘소와 신도비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 있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즉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