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리(徐貞履)
형조판서 벽오 이시발의 사위
[생졸년] 1599 (선조 32) - 1664 (현종 5)
[생원진사시] 인조(仁祖) 2년(1624)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52위/합격연령 : 26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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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자는 면중(勉中)이다. 본관은 대구(大丘)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고조는 참의(參議)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서고(徐固)이고, 증조는 증 영의정(贈領議政) 서해(徐嶰)이며, 조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서성(徐渻)이다.
부친 통헌대부(通憲大夫) 달성위(達城尉) 서경주(徐景霌)와 모친 선조의 딸 정신옹주(貞愼翁主)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서정리(徐正履)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감찰(監察) 심열(沈說)의 딸 삼척심씨(三陟沈氏)이고, 재취 부인은 판서(判書) 이시발(李時發)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음직으로 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1624년(인조 2) 증광시 진사 3등 52위로 사마시에 합격한 후, 관직에 나아가 풍저창주부(豊儲倉主簿)·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 영춘현감(永春縣監)· 익위사사어(翊衛司司禦)· 청풍군수(淸風郡守)· 형조정랑(刑曹正郞)·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충원현감(忠原縣監)·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부평부사(富平府使)· 남원부사(南原府使)· 공조정랑(工曹正郞)· 풍덕부사(豊德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충원현감으로 나아갔을 때 고을 풍속이 몹시 사나웠는데, 다스린 지 3년 만에 고을 풍속이 저절로 교화되어 조용해졌다. 슬하에 6남 7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병조참의(兵曹參議) 서문상(徐文尙)· 관찰사 서문중(徐文重)· 서문하(徐文夏)· 서문징(徐文徵)· 서문유(徐文裕) 등이다.
묘는 경기도 장단(長湍) 도라산(都羅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