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백제 계백장군 묘(百濟階伯將軍墓)

야촌(1) 2011. 10. 7. 04:06

백제 계백장군 지묘(百濟階伯將軍之墓)

 

 

 

● 계백장군 묘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다.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에 침입하였을때, 5천명의 결시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최후를 맞아 묻힌 곳이다. 출전하기에 앞서 처자를 적국의 노비를 만들지 않으려고 자기 손으로 죽여서 비장한 결의를 보인 계백은 황산벌에서 김유신의 군사 5만명과 대결하여 4차례에 걸쳐 물리쳤다.

 

그러나 어린 화랑 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의 총공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계백장군의 의로운 죽음을 본 백제 유민들은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은밀하게 가매장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묘소 인근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묘제를 지내오던 관행이 이어져 왔다.

 

전에는 계백장군 묘라는 것이 밝혀지지는 않고 주민들 사이에서만 구전되어 왔는데 근래에 이르러 본격적인 고증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비석도 10년 전에는 "전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에서 전(傳)자를 빼고『百濟階伯將軍之墓』로 바꾸었다. 이 가장골의 묘를 계백장군의 묘로 고증한 것은 전 부여박물관장이었던 고 홍사준 선생이라고 한다.

 

그는 첫째, 묘소의 방향이 정남향으로 백제분묘와 같은 방향으로 설치된 점. 둘째, 묘소 뒤쪽의 산 이름이 충장산, 충혼산, 충훈산, 수락산으로 불리워 장군의 죽음과 같은 맥락의 지명유래가 있는 점. 셋째, 장군의 시체를 가매장한 데서 이곳 지명이 가장골이고 마을 지명이 충곡리라 부르고 현지주민들에게 장군묘로 전해진 점.

 

넷째, 백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이 묘소와는 근거리에 있는 점등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 이곳은 공동묘지였다.  이제 장군묘역 성역화 작업을 하면서 타 묘들은 모두 이전시키고 장군 묘역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