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김태서 묘 - 전주김씨 시조 / 母岳山(794m)

야촌(1) 2011. 9. 19. 19:33

■ 김태서(金台瑞) /전주김씨 시조

    [생졸년] 미상∼1257년(고종 44).

    [고려문과] 명종(明宗) 미상(未詳)년미상(未詳) 명종 시년 미상(試年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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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설(金殷說)의 9대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高宗-고려 제23대왕)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증조는 김경보(金景輔), 조부는 김세린(金世璘), 부(父)는 김봉모(金鳳毛)이다, 항몽전(抗蒙戰)에서 큰 전공을 세웠던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김경손(金慶孫)의 아버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가 되고,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재물을 좋아하여 남의 전답을 탈취하여 원성이 높았으나, 장자(長子) 약선(若先)이 당시의 권신 최우(崔瑀)의 사위였기 때문에 탄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항(崔沆)이 집권하면서 1251년 오승적(吳承績)사건에 연루되어 가산을 적몰(籍沒)당하였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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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928년에 간행된 전주김씨 무진보(戊辰譜)에 시조묘가 있는 모악산((母岳山-794m)이 그려저 있고 김태서(金台瑞)의 32대손으로김일성의 본명인 김성주(金成柱)와 동생 김철주(金哲柱)와 김영주(金英柱)의 이름이 기록되 있다.

 

전주 김씨의 시조 묘는 오랜세월 실묘(失墓) 되었다가 근대인 1970년대 초반에 찾은것으로 되어있다. 후손들이 시조 묘를 찾기 위해 족보를 해독하던 중 '귀이(龜耳)의 안앙(安昻)에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귀이(龜耳)는 지금 구이(九耳)의 옛이름이고, 안앙(安昻)은 모악산 입구 일대라는 점을 이해하고 그 부근을 삿사치 살펴서 찾았다고 한다.

 

시조 김태서(金台瑞)는 1257년에 사망했으므로 무려 700 여년 뒤에 찾은 셈이다. 따라서 그 진위여부에 대한 뒷말이 없을 수가 없는데, 어쨌던 전주김씨 문중에서는 시조 묘로 확신하는 듯하다.

 

전주김씨는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달혼(達渾)의 후손들이 경북 의성과 안동 등지에 집성을 이루며, 주로 이북지방에 성족(盛族)을 이룬다. 근대 인물로는 김재순(金在淳) 제13대 국회부의장이 있다.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모악산 下

 

↑1988년 12월 전주김씨 중앙종친회에서 근립한 묘비석이다.

 

 

 

↑묘비의 비문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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