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이미숭(李美崇)

야촌(1) 2011. 9. 18. 11:06

 이미숭(李美崇) 

 

조선전기(1346~?)의 무신.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반곡(盤谷). 이규보(李奎報)의 4세손, 조부는 동북면선위사(東北面宣衛使)· 예부상서(禮部尙書)·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진 이헌(李憲)이다,  

 

아버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안북장군(安北將軍) 이언(李彦)이고. 어머니는 평강채씨(平康蔡氏)로 예부시랑(禮部侍郞) 채윤(蔡允)의 딸이다. 외아들로 태어났다. 후손으로는 효자로 이름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이천을(李天乙)을 외아들로 두었다. 후손으로 7세손 이경령(李景齡)이 있다. 후손들이 그의 묘소 주변의 일대를 세거지로 삼았다.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경학(經學)을 전수받았으나. 무반(武班)으로 입신하여 관원으로 출세한 뒤에도 늘 병서(兵書)를 읽고 궁마(弓馬)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관력(官歷)에 대하여는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북방 오랑캐의 침략과 왜구의 노략질이 있을 때마다 전장으로 나아가 적개(敵愾)의 공훈을 세웠으며, 마침내 종3품인 안동장군(安東將軍)에 올랐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한 뒤 1392년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하여 진서장군 최신(崔信)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주둔지인 충청도 미산(尾山)과 강경에서 접전을 펼치다 패하고, 경상북도 김천의 덕대산에 들어가 성을 쌓고 싸우다 전세가 불리하자 남하하여 경상도 금릉과 성산에서도 격전을 치렀다.

 

패퇴를 거듭한 끝에 고령과 합천의 접경 지역인 상원산(上元山)에 들어가, 최신 장군 등과 함께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하여 후일을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벽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안동장군 이미숭 묘역 전경.>경북 고령군 쌍림면 용리 산39-1번지

 

 ↑반곡재(盤谷齋=이미숭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 : 고령군 쌍림면  용리 반룡동 마을 뒤쪽에 있다.

 

 ↑반곡재(盤谷齋)의 현판 글씨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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