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옹패설(櫟翁稗說)
● 저작동기 및 의의
<역옹패설>은 고려 말기 문신 이제현이 지은 시화, 잡록 집으로 4권 1책의 목판본 이다.
초간본은 저자 이제현(李齊賢)의 77세 때인 1363년(공민왕 12)에 막내아들 이창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이 편집하고 이색(李穡)의 서(序)를 받아 경주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초간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432년(세종 14)에 세종대왕의 명으로 집현전학사들이 선사(繕寫)해 만든 원고 본을 강원도 감영이 있던 원주에 내려 보내 간행한 것으로 역옹패설 말미에 편성 및 출판과정을 설명한 집현전 응교 김빈(金鑌)의 발문이 있다.
이 원주본의 《중간본》부터 익재난고와 역옹패설을 합하여 익재집(益齋集) 이라고 한다.
이 중간본을 2016년 2월 22일(월요일) 문화재청이 계명대학교도서관소장본인 익재난고(益齋亂藁)는 보물 제1892호로 역옹패설(櫟翁稗說)은 보물 제1893호로 지정 발표했다.
이 중간본은 국내에는 이겸로(李謙魯)의 산기문고(山氣文庫)에 일부(권9∼10)가 남아있고, 국외에는 일본 호사분코[蓬左文庫]에 일부가 전한다. 이 판본의 특징은 조선이 개국한 지 40년이 지난 후임에도 고려의 국왕과 원(元)의 천자를 높이기 위한 개행(改行)과 간자(間字)의 방식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본의 문집에서 자주 보이는 행초(行草)가 여전히 혼용되고 있고 같은 자가 반복될 때에 쓰이는 기호인 ‘ 〟’표도 자주 쓰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전기의 한문학 연구는 물론 당시의 출판문화와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제3간본은 임진왜란 후인 1600년(선조 33)에 후손 이시발(時發)이 경주부윤으로 있으면서 판본을 발견하여 직접 교정하고 중간했다. 이때 권말에 시문 수편을 추가했다. 서문은 임상원, 발문은 유성룡(柳成龍)이 썼다.
이제현은 <역옹패설>의 저작동기에 대해 "여름철 계속되는 장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지었다"고 하였다.
<역옹패설>이라는 명칭에 대해 살펴보면, 역옹은 자기 호이고 패설은 자질구레한 내용을 모은 글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역은 낙(樂)에서, 패는 비(卑)에서 음을 취했다고 하였다.
<역옹패설>은 저자가 스스로 박잡한 글로 잡문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후대인들에게 작자 당대의 현실과 문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남겨준 요긴한 책이다. 또한 이것은 <파한집>이나 <보한집>의 성격을 계승하였으면서도 다양한 특징들을 포괄하고 있는 책이다.
●내용분석 및 구성
<역옹패설>은 책 전체가 전집과 후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집이 다시 1,2권으로 되어 있어 모두 합하면 4권이 되는 셈이다. 전집에는 작자 자신의 서문이 있고, 1권에는 17조, 2권에는 43조의 역사와 인물일화, 골계등이 있고, 후집에서는 작자 자신의 서문과 1권에는 28조, 2권에는 25조의 시화와 세테담등의 문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고려의 역사를 시초에서부터 살펴나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점을 이것저것 들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대로 저술했다. 이 책에 나타난 주요 내용은
첫째, 이제현은 몽고, 즉 원으로 부터 치욕을 당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한 방법으로 부당한 사대주의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둘째, 그는 전통성, 즉 민심의 기반이 없는 위조(僞朝)에서의 영화로운 생활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책에서 삼별초 정권을 부정적 입장으로 보아 위조라고 생각한 것에 기인한다.
다시말하면, 삼별초가 고려의 백성을 협박하고 부녀자들을 강제로 이끌어 진도에서 비상정부를 구축하였으므
로 민심을 거역한 위조라고 본 것이다.
세 번째, 무신정권의 전횡을 폭로하고, 그 폐단을 고발하고 있다.
이제현은 오언절구의 시를 통해 무신정권이 장악하는 공포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네 번째, 이 책에는 고려 말기 문학에 있어서 용사론(用事論)과 신의론(新意論)의 현황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포
함되어 있다. 이제현은 한유, 이백 등의 당대의 시인들을 비롯한 유명한 중국문인들의 시를 거론 하기도 하
고 정지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시인들에 대한 것도 평을 하고 있다.
그는 용사에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단어에 대한 사용을 금하고 있고 지명의 사용도 실제정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비판하였다. 이러한 그의 비평 태도는 시어의 현실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역옹(轢翁) : 자신은 나라의 큰일을 할 사람이 못되며 단지 오래나 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표 현 하고 있다.
轢(상수리 나무역)은 재목감이 못되는 하찮은 나무를 나타낸다.
↑고려후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그림.
[작가] 이제현(李齊賢).
[종류] 그림. / 크기 : 73.6 × 109.4cm.
[제작연도] 고려 후기.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 익재집책판(益齋集冊板)
고 려 말의 문신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문집(文集).
[보관] 구강서원(경북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679)
[구분] 전집, 활자본
[저자] 이제현(李齊賢)시대 : 1635(조선 인조 13)
[익재집책판(益齋集冊版)] 유형문화재 제233호.
활자본. 15권. 1635년(인조 13) 간행. 그 후 1693년(숙종 19) 경주(慶州)에서 중간되었고, 1813년(순조 13) 증보 ·간행되었다. 내용은 《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 동(同) 습유(拾遺) 1권, 그리고 《역옹패설(翁稗說:낙옹비설)》 전집 2권과 후집 2권으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 이색(李穡) ·임상원(任相元)의 서문과 연보(年譜), 뒤에 허경(許)의 중간발(重刊跋), 그리고 습유 끝에 유성룡(柳成龍) ·이시발(李時發) ·김빈(金)의 발문이 있다. 또,《역옹패설》 전 ·후집 책머리에는 저자의 자서(自序)가 각각 있다. 특히 저자의 수필(隨筆) ·시화(詩話) 중에는 사서(史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사(遺事)와 기문(奇聞) 및 정치 ·사회 ·인물 등에 관한 그의 의견이 기록되어 있어 고려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1911년 고서간행회(古書刊行會)에서 《파한집(破閑集)》 《보한집(補閑集)》 《아언각비(雅言覺非)》 《동인시화(東人詩話)》 등과 합본하여 활자본 1책으로 발행한바 있다.
●효행록(孝行錄)
효자(孝子) 62명의 전기(傳記)를 모아 엮은 책.
활자본. 1책. 고려시대에 권준(權準)이 중국의 이름난 효자 24명의 전기를 모아 화공(畵工)을 시켜 그림으로 그리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찬(贊)을 받아 그의 아버지 권보(權溥)에게 보였더니, 권보가 다시 효자 38명의 전기를 엮어 이제현의 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권보의 증손 권근(權近)이 이를 교정, 주(註)를 달고 《효행록》이라 하였다.
초판된 것은 고려 말이며, 1415년(태종 15)에 김을신(金乙辛) ·이호신(李好信) 등이 인간(印刊)하였고 1428년(세종 10)에는 설순(循) 등이 개정하여 간행하였으며 그 후 1600년(선조 33)에 간행되기도 했다.
이제현의 서(序), 권근의 후서(後序) 및 송회(宋晦)의 발(跋)이 있다.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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