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앙(商鞅, 약BC390 ~ BC 338)
중국(中國) 진(秦) 나라의 정치가(政治家). 별명(別名)은 위앙(衛鞅)ㆍ본명은 공손앙(公孫鞅)으로, 전국시대의 진(秦)나라를 재조직하여, 통일국가 진[秦(BC 221~206)]을 세우는 데 공헌(貢獻)했다.
상앙은 본래 진나라 사람이 아니다. 동방의 소국(小國) 위(衛)나라 태생이다. 야심가인 상앙에게 위나라는 너무 작았던 것일까. 그는 고국을 떠나 북방의 강국 위(魏)나라에 가서 공숙좌(公叔座)라는 대신을 섬겼다. 공숙좌가 죽자 위(魏)나라를 떠나 진(秦)으로 들어가 출사(出仕)하게 되었다.
그는 국가는 오직 권력(權力)으로만 유지(維持)될 수 있고, 그 권력은 대규모(大規模) 군대(軍隊)와 충분(充分)한 식량(食量)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전국시대에 진나라 효공(孝公)의 신하로 들어간 상앙은 나라를 분할하여 다스리게 했던 봉건제(封建制)를, 중앙(中央)에서 임명(任命)한 관리가 지방을 다스리는 군현제(郡縣制)로 대체(代替)했다.
그는 새로운 토지·조세·징병 제도를 만들고, 법을 엄격(嚴格)하고 획일적(劃一的)으로 시행(施行)할 것을 강조(强調)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농사나 군역과 같은 생산적(生産的)인 직업을 갖도록 강요(强要)했고, 상업을 억제(抑制)했으며, 백성들 사이에 상호감시체제(相互監視體制)를 세웠다.
그러나 그는 388년 효공의 죽음과 함께 영향력(影響力)을 잃고 거열형(車裂刑=죄인의 다리를 두 대의 수레에 한쪽씩 묶어서 몸을 두 갈래로 찢어 죽이던 형벌)에 처해졌다.
상군서(商君書)는 그의 사상과 저작을 수록하고 있다고 추측되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책은 매우 실용주의적이며, 법가(法家)의 권위 있는 저작이다.
↑상앙화상(商鞅画像)
↑거열형(車裂刑)
죄인의 다리를 두 대의 수레에 한쪽씩 묶어서 몸을 두 갈래로 찢어 죽이던 형벌)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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