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중종(조선 제11대왕)의 자녀들

야촌(1) 2011. 2. 25. 19:23

■조선 제11대왕 중종의 자녀들

 

  중종은 2명의 계비와 6명의 후궁에게서 모두 9남 11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은 인종대왕으로 장경왕후 윤씨 소생이다. 둘째 아들은 명종대왕으로 문정왕후 소생이다.


후궁 소생으로 7남이 있는데, 1남은 복성군(福城君) 미(嵋)로 경빈 박씨 소생이다. 파평 윤씨 현감 증 찬성 인범(仁範)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1527년(중종 22)에 김안로가 일으킨 작서의 변에 생모가 혐의를 받아 그와 함께 작호를 빼앗기고 상주로 축출되었다가 1533년(중종 28)에 사사되었는데, 1541년(중종 36)에 인종이 동궁으로서 상소를 올려 설원되었으며, 관작이 회복되고 선조의 4남 신성군(信城君)을 계후로 삼아 봉사(奉祀)케 하였다.

 

고종 때 정민(貞愍)으로 시호가 내려졌으며, 묘소는 양주 접동면 궁동리 봉화현에 있다.
2남은 해안군(海安君) 희인데 1511년(중종 6) 6월 15일에 출생하였으며, 숙의 홍씨 소생이다.

 

1549년(명종 4)에 현록대부,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올랐고, 문소전 · 사옹원종부시 도제조에 이르렀다.

1573년(선조 6) 8월 6일에 향년 63세로 별세하였으며, 그 해 9월 29일에 장사지냈는데 비명(碑銘)은 영의정 홍섬이 찬했고, 시장(諡狀)은 우의정 이휘지가 찬했으며, 행장(行狀)은 이관운이 찬하였다.

 

1788년(정조 12) 정희(靖僖)로 시호가 내렸다. 부인은 진주 류씨(柳氏) 진산군 증 찬성 홍(泓)의 딸과 거창 신씨 참봉 증 찬성 홍유(弘猷)의 딸이다. 3남은 금원군(錦原君) 영으로 희빈 남양 홍씨 소생이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며, 묘소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영산 자좌인데 비명은 여성군 송인이 지었다. 

부인은 군부인 해주 정씨(鄭氏)로 도사 증 찬성 승휴(承休)의 딸인데 자식이 없어 덕흥대원군의 아들 인(?)을 입 양했다.



4남은 영양군(永陽君) 거(?)로 창빈 안산 안씨 소생이다. 중종 1519년(중종 14) 4월 24일에 출생하여, 1551년(명종 16) 7월 27일에 향년 41세로 별세하였다. 시호는 성도(成悼)이고, 묘소는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동작리(銅雀里) 사좌에 표석이 있다.

 

부인은 경양군부인(景陽郡夫人) 순흥 안씨인데 문음으로 사포서(司圃署) 사포를 역임한 증 좌찬성 세형(世亨)의 딸이며 1남을 낳았는데 흥녕군(興寧君) 수전(秀全)이다. 5남은 덕양군(德陽君) 기(岐)인데 숙원(淑媛) 경주 이씨 소생이다. 

 

숙원 이씨가 출산 후 닷새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숙의 김씨 손에서 자랐는데, 중종은 물론 인종 · 명종과도 우애가 깊었으며 선조도 대접이 극진했다. 종친부 종부시에 종사하고 문소전 · 연은전 양전의 일을 보았다.

 

  덕양군은 성격이 어질고 겸손하였으며, 음악에도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 어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사냥과 낚시로 지내다가 1581년(선조 14) 6월 22일 향수 57세로 별세하였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며,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 동남현 둔덕에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

 

또 묘소 아래 궁내동 366번지에는 덕양군의 사당 정희사(靖僖祠)가 자리잡고 있다. 부인은 호조 판서 권찬(權纘)의 딸로서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으로 봉해졌으며 현록 대부 풍산군(豊山君) 종린(宗麟)을 낳았다.

그 외의 소생으로 풍성군(豊城君) 희린(希麟), 풍천도정(豊川都正) 명린(命麟), 풍해수(豊海守) 계린(季麟)이 있다.

 

●조선 제11대왕 중종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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