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제의례·제문

순종 장례식 사진(3)

야촌(1) 2011. 2. 18. 23:37

순종 장례식 사진

 

1926년 4월 25일 아침 6시15분, 평소병약했던 조선 27대 임금이었 순종

(純宗.1874~1926, 재위 1907~10)이 52세를 일기로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신문은 '5백년 종사의 마지막 황상(皇上) 승하'라고 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 왕조 5백19년의 막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왕실장례행렬에 쓰이던 죽안마

 

성복제(成服祭)

 

↑창덕궁 앞에서 곡을하는 학생 조문객들

 

↑창덕궁 앞에서 곡을 하는 학생 조문객

 

 

 

↑창덕궁 앞을 오가는 조문객들

 

 

 

↑창덕궁 희정당 앞에 도착한 일본 칙사(勅使)

 

↑훈련원 영결식장 전경

 

↑발인장면

 

↑돈화문 앞을 지나는 어여

 

 

 

 

 

 

 

↑살곶이 다리를 건너는 장례행렬

 

↑유릉에 도착한 어여

 

↑유릉에 도착한 어여에서 관을 내리는 모습

 

↑부장품들(필기류들)

 

↑부잘품(패물들)

 

↑부장품 패옥과 시계 등.

 

↑부장품(서책, 주역, 증보문헌비고)

 

↑부장품(도장갑)

 

 

 

↑공사중인 유릉. `능상각`이라는 원뿔 모양의 덧집을 지은 후 능을 조성했다.

 

↑유릉 전경(裕陵)

 

조선 제27대 왕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과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1872~1904), 계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1894~1966) 세 사람을 합장한 무덤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洪陵)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순명효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1904년(광무 8) 11월 5일 숨졌고, 이듬해 1월 4일 양주 용마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나 그해 6월 11일 홍릉 왼쪽 산줄기 현 위치에 안장되면서 순명효황후를 이장하여 합장하였고, 1966년에는 순정효황후가 합장되었다.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릉인 유릉(裕陵)은 조선 왕릉 중에서 하나의 봉분에 세 명을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이다. 홍릉처럼 황제릉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봉분을 감싼 병풍석과 난간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졌으며, 혼유석·망주석·사각 장명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된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는 없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이 있고, 침전 앞 참도(參道) 양쪽에 문인·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 등 동물 석상이 차례로 배치되었다. 침전 외에 비각·홍살문·수복방· 재실 등의 부속건축물이 있다.

 

 

↑유릉(裕陵) 장지에서 장의품 죽산마를 태우는 장면

 

↑유릉의 우제(장례후 첫 제사)

 

↑장례를 끝내고 도농리를 지나 돌아오는 장면 사진자료 어장의사진첩(御葬儀寫眞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