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선생문집 제15권/권근 저
이생 반(李生蟠)에게 주는 서
내가 급제(及第)하였을 때 나의 할아버지 성재공(誠齋公)이 경계하기를,
“선군(先君) 국재(菊齋) 문정공(文正公)이 공거(貢擧)를 맡았을 적에, 익재(益齋) 이문충공(李文忠公) 이제현(李齊賢)이 20미만의 나이로 급제하였으나 끊임없이 학문을 좋아하므로, 공이 아름답게 여겨 드디어 사위로 삼았었는데, 문충공은 누가 어느 글을 잘 다룬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가서 수업(受業)하고, 누가 무슨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빌려다가 읽되, 날마다 부지런히 하여 밤을 낮삼아 하였으며, 가끔 손님이 오게되 면 벽하나 사이라, 글읽는 소리가 손님과의 대화를 방해하므로 선군께서 중지하라 명하셔도 오히려 소리만 낮추고 중지하는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학문은 날로 진보되고 명성은 날로 전파되어 선묘(宣廟)께서 큰 기국으로 여기게 되었다. 뒤에 호가(扈駕 임금의 수레를 호종하는 것)하고 북으로 연경(燕京)에 조회하고, 남으로 오(吳)와 회계(會稽)를 유람하여, 천하의 명유(名儒)ㆍ석사(碩士)들과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이미 그 정대 고명(正大高明)한 학문을 지극하게 하였고, 천촉(川蜀 촉 나라 땅.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봉사(奉使)하여 유람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또한 그 기위(奇偉)하고 장엄(壯嚴)한 관람을 한없이 하여 가슴속에 쌓았으니, 말을 하매 문장(文章)이 되고, 실행하매 도덕이 되었으며, 국가에 시행하매 공로와 업적이 됨으로써, 여섯 조정의 문명(文明)한 교화를 보좌하고, 태평(太平)을 장식하여 한없이 전함이 혁혁(赫赫)했었다.
옛사람들이, 소년에 과거함을 불행하게 여긴 것은, 그 학업을 방치할까 두려워서인데, 문충공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행한 일이겠느냐! 너의 과거가 또한 빠르고 너의 학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너는 조금 이루어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문충공의 한 일을 본받아 게을리 말라.”
하셨다.
내가 이미 그 명령을 공경스럽게 받았으나, 세상 일 때문에 학업을 폐하게 되어, 뜻은 더 힘쓰지 못하고 학문은 더 발전되지 못한 채 어정어정 지낸 것이 또한 10년이었다. 비록 그 교훈대로 하지는 못하였으나, 또한 감히 마음에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이번에 조계종(曹溪宗)의 현사(玄師)가 세 번이나 우리집에 와서 말하기를,
“이 소년(李少年)은 익재(益齋) 문충공의 손자인데, 타고난 자질이 아름다운데다가 배우는 데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문충공에게 손자가 있는 것을 기뻐하여, 제공(諸公)에게 교회(敎誨)되는 말을 받아 그가 더욱 진보되게 하려 하니, 그대는 한마디 하여 주시오.”
하였다.
내가 사양해도 되지 않으므로 성재(誠齋)에게서 들은 것으로 고하여 주고 말하기를,
“현사가 이 말로 소년에게 말하여 주면 소년은 반드시 흥기(興起)하게 될 것이다. 대개 아름다운 자품을 타고난 사람은 얻기 쉽지만, 학문이 몸에 배어 이루어진 사람은 얻기 어렵다.
가르치는 것이 밝지 못하고 단정하지 못하면, 어려서는 효제(孝悌)의 직분(職分)을 알 수 없고 장성하여서는 의리(義理)의 분수를 분별할 수 없어, 학문에 얻는 것이 없고 언행(言行)에 두서가 없게 되는 것이니,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도 믿을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문장(文章)과 덕업(德業)이 혁혁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생(生)이 능히 그의 조부로 법을 삼아 그의 학문을 배워간다면, 앞날에 조정에서 드날리며 배운 것을 펴게 되어, 도덕과 업적이 장차 그의 조부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되어 사람들이 모두 문충공의 손자임을 믿게 될 것이다.
문장은 또한 그 도덕의 영화(英華)로 발로(發露)되는 것이니, 이생(李生)이 그 아름다운 자질만 믿지 말고 더욱 그 학문을 힘써야 될 것이다. 학문하는 방법이나 의리를 쌓는 일 같은 것은, 여러 군자(君子)들 중에 반드시 말한 분이 있을 것이니, 생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홍무(洪武) 기미년[1379년, 우왕5] 3월 계사(癸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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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李生序 蟠
予之登第也。吾大父誠齋公戒之曰。先君菊齋文正公爲貢擧時。益齋李文忠公。年未冠擢高科。好學不已。公嘉之。遂舘甥焉。文忠聞某有善治某書。必往受業。聞某有某書。必借讀之。日孜孜而夜繼晷也。往往先君有賓客。隔壁讀書。聲亂賓主之言。則命止之。而猶低其聲而未嘗輟也。學以日進。華問以日播。大爲宣廟器重。後迺扈駕。北朝燕京。南遊吳會。得與天下之名儒碩士摩礱切磋。旣極其正大高明之學。奉使川蜀。游歷往還。又極其奇偉壯峙之觀。蘊之胷中。言之而爲文章。行之而爲道德。施之國家而爲功業。以佐六朝文明之化。而賁飾大平。垂之無窮者炳炳也。古之人以少年登科爲不幸。懼其廢業也。如文忠者。豈不幸之有哉。汝之登第亦早矣。汝之學問未也。汝毋安於小成。以效文忠之所爲毋怠。予旣敬受其命矣。然以世故廢業。志不加勉。學不加進。悠悠者又十年矣。雖未能如其敎焉。亦未敢忘于懷也。今曺溪玄師三造吾廬而言曰。李少年。益齋文忠公之孫也。生質之美而學不厭。予喜文忠之有孫。欲煩諸公敎誨之言以益其進也。子惠一言。予辭不獲。以所聞於誠齋者告之。曰。師以此語少年。少年必有以興起矣。夫人美質之稟於天者易得。而學問之得於己者難矣。敎學不明。蒙養不端。幼而不能知孝悌之職。長而不能辨義理之分。學問之無所得而言行之無其倫。生質之美。有不足賴者矣。尙何望文章德業之炳炳也哉。生能以乃祖爲法而學其學焉。則他日揚于王庭。展布所學。道德功業。將無愧於其祖。而人皆信文忠之有孫也。文章亦其英華之所發爾。生無恃其生質之美。而益勉其學焉可也。若夫學問之方。義理之蘊。諸君子必有言之者矣。生其服膺焉。洪武己未三月癸巳。
[자료문헌]
◇陽村先生文集卷之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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