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안겸재 진찬 유서 (安謙齋眞贊有序 ) - 이제현

야촌(1) 2011. 3. 9. 22:46

동문선 제51권

 

안겸재 진찬 유서 (安謙齋眞贊 有序)

◇安謙齋는 안향의 손자이다.

 

이제현(李齊賢) 찬(撰)


안 문성공(安文成公)은 일대에 있어서 유학자의 종장이었다.

내가 아직 20도 못 되었을 때 한 번 길에서 뵈옵고 드디어 사랑을 받았으며 인하여 그의 손자인 겸재(謙齋)를 알게 되었다.

 

그 후 10년에 나의 아버지 동암공(東菴公)이 과거에 고시관으로 있을 때에 겸재는 책(策)으로 응시하여 과거에 올랐다. 이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사귐이 가장 오래 되었다. 지정(至正) 경자년에 겸재가 죽었다.

 

이듬해 가을에 남아 있는 그의 화상을 보고 섭섭하여 그 옆에 적는다.

검소하였으나 고루하지 않았고 온화하였으나 지나치지 않았다. 확고히 법도를 지켰고 엄연히 아름다움을 발휘하였으니 그는 문성공의 손자로서 알맞았었다.

 

실천에 노력하고 말은 매우 적었다. 온자한 그의 문장이었고 평담(平淡)한 그의 시(詩)었으니 동암(東菴)의 제자로서 마땅하도다. 벼슬이 양부(兩府)를 다 거쳤으니 출세하지 못했다고 할 수 없으며, 나이는 70을 넘으셨으니 수를 못했다고 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벼슬이 균형(鈞衡)에 이르지 못하고 공덕이 백성에 흡족히 미치지 못하여 사림(士林)의 여론은 오히려 유감으로 여긴다. 러나 산수(山水) 간에서 마음대로 지내던 생활은 유양(庾亮)도 못 당할 것이요.

 

시와 술로 즐겁게 놀던 풍류는 계륜(季倫)도 비할 바 못 될 것이니 이것은 우리들이 그의 평생을 생각하여 잊기 어려우며, 남긴 화상을 바라보며 더욱 감개 깊은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