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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사적기(事蹟記)

야촌(1) 2010. 12. 11. 02:07

청장관전서 제3권 >영처문고(嬰處文稿)/이덕무(李德懋) 著

해인사(海印寺)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사적기(事蹟記)

 

보지도인(寶誌道人)은 소량(蕭梁 소연(蕭衍)이 세운 양(梁) 나라)의 불제자(佛弟子)이니 부처에 아첨하던 그 당시에 고승으로 이름났었다. 그가 죽게 되자 답산가(踏山歌) 1편을 내놓고 도가 높은 제자에게 주면서 이르기를,

 

“내가 입적(入寂)한 뒤에 응당 신라의 명승이 올 것이니 이 답산가를 전하여 주라.”하였다. 과연 수년 후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대사가 지공(誌公)의 풍문을 듣고 신라에서 북으로 와 지공을 뵈려 하였다. 그러나 지공은 이미 입적한 뒤라 그 제자가 눈물을 흘려 슬퍼하면서 간수하여 두었던 답산가를 공손히 주고 지공의 계언(戒言)도 전하였다.

 

두 대사는 공손히 답산가와 계언을 받들고 눈물을 흘려 슬퍼하였다. 그리고 합장(合掌)하여 지공의 무덤 앞에 서서 3주야에 걸쳐 한결같이 범주(梵呪)와 염불을 부지런히 외었더니 무덤이 열리며 지공이 나타나 이르기를,

 

“신라 우두산(牛頭山)은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이니, 사찰을 세우면 기이한 응보(應報)가 많을 것이다.”하였다. 두 대사는 두렵고 공경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두산이란 합주(陜州 지금의 합천(陜川))의 가야산(伽倻山)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나무하는 노인을 만나 사찰을 창건할 만한 곳을 물었더니 노인은 웃으면서 이르기를, “저쪽으로 두어 언덕을 돌아가면 물이 모여들어 합수되는 곳이 있다. 그 위에는 단단한 기왓장 수만 개가 있는데 왜 그리로 가서 절터를 보지 않는가?”하였다.

 

두 대사가 사례하고 나아가 보니 과연 지대가 평평하고 넓으며 단단한 기와가 겹겹으로 쌓여 있었다. 서로 말하기를,

“장소가 있고 기와도 있지만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이 역사를 도울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는 공경히 주문을 외었더니, 서기(瑞氣)가 발산하여 곧장 허공 밖에까지 뻗쳐나갔다.
이때에 애장왕(哀莊王)의 왕후가 등에 종기가 났는데 모든 의약(醫藥)을 다해 보았지만 치료되지 않았다. 이에 명하여 초야(草野)나 암혈(巖穴)에 숨어 있는 기이한 인물이나 기술을 통달한 성인을 구하게 하니, 사명을 띤 관원들이 온 나라에 편답(遍踏)하였다.

 

이때 사자(使者) 한 사람이 서기(瑞氣)가 가야산 정상에 뻗쳐 있는 것을 보고는 두 대사에게 머리를 조아려 명을 전하고 함께 가기를 청하였다. 대사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전대 속에서 혈색같이 고운 분홍실을 한오라기 전하여 주면서 이르기를, “이 실의 한 끝을 후원의 배꽃나무에 잡아매고 다른 한 끝은 종기에 접착시켜 놓으면 종기가 바로 나을 것입니다.”하였다.

 

사자는 돌아와서 그대로 시험하였더니 배나무는 말라죽고 종기는 즉시 완치되었다.
애장왕은 이를 은혜로 여겨 사자를 보내어 사례하고 대사의 소원이 무엇인가 물으니, 이는 장차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대사는 사찰을 건립하는 일로써 대답하였다. 왕은 대목(大木)에게 명하여 국가의 예산으로 사찰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에 합주의 이정(里丁)인 이거인(李居仁)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길에서 눈은 셋이고 다리를 절름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거인은 이를 불쌍하게 여겨 길렀는데, 그 강아지는 매일 점심때에 한 끼의 밥만을 먹었으며 주인이 출입할 때면 반드시 몇 리라도 보내고 맞이하였다. 3년 후에 죽자 거인은 슬퍼하여 관(棺)에다가 염습하여 장사하고 제사하기를 사람과 같이하였다.

 

그런지 2년 뒤에 거인은 아프지도 않고 갑자기 죽었다. 영혼이 경황없이 불가에서 말하는 명부(冥府)라는 곳으로 들어가니, 대문 안에 엄연하게 공복(公服)으로 차린 관원이 있었다. 그는 당을 내려와 다정하게 맞이하여 이르기를,

 

“우리 주인께서는 어찌하여 오셨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거인이 보니 전연 면식(面識)이 없었으나, 다만 그 눈이 셋이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내가 화액이 있어 인간의 세계에서 모피(毛皮)를 쓰고 있어야 했는데, 다행히 주인의 은혜를 입어 3년이 지난 후 다시 이 벼슬에 봉직되었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거인은 사례하고 애원하여 이르기를,

 

“나는 용렬하니 염왕전(閻王殿) 앞에서 무슨 말로 대답하여야 하겠습니까?”하니, 눈이 셋 달린 사람이 부탁하기를,

“다만 세상에 살아 있었을 때에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보고자 생각하였으나 성사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시오.”하였다.

 

거인이 그 말대로 아뢰었더니, 염왕은 크게 기특히 여겨 귀신의 명부에서 삭제하고 석방하도록 명하였다. 눈이 셋 달린 사람은 작별의 인사를 하면서 이르기를,

 

“세상에 돌아가시면 팔만대장경을 등사하시고 화주(化主)의 권선권(勸善券)에 합주(陜州)의 도장을 찍어 잘 간수하여 두시오. 그렇게 하면 후일에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거인은 살아 돌아와서 그 말대로 하여 간수해 두었다.
이때 애장왕의 귀공주(貴公主) 형제가 함께 천연두를 앓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홀하여 이르기를,

 

“만일 간수하여 둔 팔만대장경의 권선문을 얻는다면 우리의 병은 나을 것이다.”하였다.

왕이 명하여 구하게 하였더니, 합주의 원이 거인을 역마로 달려 보내왔다. 거인이 공주를 보니 공주는 땅 속에 있던 눈이 셋 달린 사람의 말을 하여 이르기를, “작별한 뒤로 평안하십니까?”하고는 왕에게 말하기를,

 

“팔만대장경은 저승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염왕께서 이 사람을 석방하여 주신 까닭은 세상에 나와서 이 일을 도모하게 하신 것입니다. 원하건대 왕께서는 이 사람을 도와 성사하소서.”하고, 거인을 작별하여 이르기를,

 

“이제부터는 영원히 못 만날 것입니다.”하였다. 그러고는 곧 병이 나았다. 이때 거제도 바다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를 큰 배가 떠 있고 그 안에는 팔만대장경이 가득하게 실려 있었는데, 모두 금은으로 된 글자이었다. 

 

왕은 온 나라 안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거인과 함께 섬에 가서 간행하고 합주 해인사로 옮기어 보관하도록 명하였다. 해인사는 바로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선생(李先生 저자 이덕무(李德懋) 자신을 가리킨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부자(夫子 공자(孔子))는 일찍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으니 군자가 어찌 괴이한 것을 말할 수 있으랴? 말하는 것도 오히려 옳지 않거든 하물며 서책에 올리는 것이겠는가?”

 

 장화(張華)의《박물지(博物志)》, 간보(干寶)의《수신기(搜神記)》, 왕자년(王子年 자년은 왕 가(王嘉)의 자)의《습유기(拾遺記)》, 단성식(段成式)의《유양잡조(酉陽雜組)》, 소식(蘇軾)의《구지필기(仇池筆記)》 등이 나오면서 괴이한 것을 말한 것이 많이 나왔으니, 이것은 기록 으로 허탄한 데에 빠진 것인데 따라 믿은 것이다.


지금 내가 팔만대장경을 기(記)하는 것은 허황되게 속이는 것을 꾸짖어 유괴(幽怪 어두워 나타나지 않는 괴이한 것)를 말하는 자의 경계로 삼으려는 것이다. 기사년(己巳年) 가을에 선전(宣傳) 종질(從姪) 서빈 낙서(書彬洛瑞)는 쓴다. 15장은 타인의 손을 빌렸다.

 

[주01]괴력난신(怪力亂神) : 괴이(怪異)ㆍ용력(勇力)ㆍ패란(悖亂)ㆍ귀신(鬼神)을 말하는데, 앞의 세 가지는 정리(正理)가 아니며, 귀신은 학문이 지극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우므로 공자는 평소 여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한다.《論語 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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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寺八萬大藏經事蹟記

 

寶誌道人者。蕭梁之佛弟子也。以名釋著於佞佛之世。將滅。出踏山歌一篇。付弟子之高足者曰。吾寂後。當有新羅名僧來。以歌傳之也。果數年。順應,利貞二大師者。聞誌公風。從新羅來。北謁于誌公。誌公已寂矣。其弟子汪然戚也。奉所藏歌。仍傳誌公戒。二師恭承歌及戒。汪然戚也。合掌立誌公瘞者三易晝夜。梵呪念佛惟勤。墓開而誌公見曰。新羅牛頭山。福地也。爾其建刹。異應多矣。二師惕然迺歸。牛頭山者。陜州之伽倻山也。谷口逢樵老人。問訊宜建刹地。樵老人笑曰。彼轉數崖。有水滙焉。上有鐵瓦萬萬。盍往胥宇。二師謝而進。果地平衍。而鐵瓦堆鱗鱗也。相謂曰。有地而又有瓦。奈無人何。誰能助是役者。秪念呪。放光瑞氣。直亘于空外而已。是時。哀莊王之后。疽于背。醫藥技殫無可已。命求異人技聖。而伏於草萊巖穴者。使者遍於國裡矣。一使者。覘瑞氣直亘於伽倻山頂。稽首致命於二師。請偕往。師辭不敢。仍探槖中。取紅絲之鮮如血色者一。傳與之曰。一端繫於後苑梨花樹。一端接於疽。疽乃已矣。使者歸試之。梨樹枯而疽則瘳矣。哀莊王德之。遣使者謝。問師之願者。將以酬之也。師以建刹復。王命大匠。損난001金建之。後有陜州里丁李居仁者。路見狗之幼者三目而蹣跚。居仁憐而畜之。狗也每日停午吃一飯。主人出入。必數里迎送焉。後三年斃。居仁悽之。斂諸棺。葬祭如人禮。居二年。居仁不病而溘然。魂惝怳入于佛氏所謂冥府者。門內有官者。儼然具公服。下堂接慇懃曰。吾主人胡爲來哉。居仁視之。素所昧而但三其目焉。又曰。昔吾有譴。被毛於陽界。幸蒙主人恩過三年。復此官矣。居仁謝僕僕曰。余劣。閻王殿前。奚辭以供哉。三目人。付之曰。秪言在陽界日。意欲刊八萬大藏經。而不遂云爾矣。居仁如其言供之。閻王大奇。命削鬼簿名。釋之。三目人別而語曰。還陽界。寫八萬大藏經化主勸善。券踏陜州印以藏置。它日。庶相逢矣。居仁甦。如其言歲寘。時哀莊王貴公主兄弟。俱病痘。忽怳惚曰。如得藏寘八萬大藏經勸善文者。吾疾瘳矣。王命求之。陜州守以居仁。應。椉傳謁公主。主作地中三目人語曰。別後平安。因謂王曰。八萬大藏經者。陰界之所貴也。閻王所以釋斯人出陽界。使圖之也。願王助斯人成之。仍別居仁曰。自此其永隔矣。已而疾獲瘳。是時巨濟洋中。有大舟浮。自何國來。滿載八萬大藏經。皆金銀字也。王命發國中匠。偕居仁往島中刊。移藏于陜州海印寺。海印寺者。迺順應,利貞之所營云。
李先生曰。吾夫子未甞言怪力亂神。君子豈可以言怪哉。言猶不可。况載之策哉。逮張華博物志,002寶搜神記,王子年拾遺記,段成式酉陽雜組,蘇軾仇池筆記出。而言怪者輩出矣。是記而溺者也。從而信之。今余記八萬大藏經者。所以貶謊誕。而爲談幽怪者戒焉。
己巳秋宣傳從侄書彬洛瑞書十五張借他手。
  

[난-001]損 : 捐
[난-002]于 : 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