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안자(晏子) -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정치가.

야촌(1) 2010. 9. 19. 12:35

■ 안자(晏子), BC578~BC 500. -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정치가.

 

↑안자(晏子)

 

중국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영(嬰). 자는 평중(平仲) 관중(管仲)과 함께 훌륭한 재상(宰相)으로 이름을 떨쳤다. BC 556년 아버지 안환자(晏桓子)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제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었다.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섬겼으며, 근검절약하고 힘써 노력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최서가 장공을 살해했을 때 장공의 시체 위에 엎드려 곡(哭)을 했지만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 BC 517년 혜성이 나타나 두려워 떨고 있는 경공(景公)에게 사치를 삼가고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가볍게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간(忠諫)했다.

 

이같은 충직한 성품 때문에 관중(管仲)과 함께 제나라의 명신(名臣)으로 일컬어진다. 안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안자춘추(晏子春秋〉8편이 전한다. 월석보(越石父)는 현명한 사람인데 체포되어 묶이어 있었다. 안자가 길을 가다 만나게 되었다. 안자는 자기 수레의 완쪽 말을 풀어주고 그를 속죄시켰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수레에 태워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안자는 월석보에게 인사 한 마디 하지 않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월석보가 절교할 것을 요구하였다. 안자는 깜짝 놀라 의관을 정제하고 사과하며 말하기를, "제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그대를 어려움에서 구출하였는데 어찌 그대는 절교를 요구하는가?" 하자 석보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자기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뜻을 편다고 합니다. 내가 묶이어 있을 때에는 저 포졸들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느껴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를 속죄하여 주었으니, 이것은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나를 알면서 무례하게 대한다면 진실로 묶이어 있을 때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안자가 그를 맞아들여 상객(上客)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마천이 말했다.

‘내가 관씨(管氏)의 저서 <관자(管子)>에서 목민(牧民), 산고, 승마, 경중, 구부 등의 각 편과 晏子의 著書인 <안자춘추(晏子春秋)>를 읽었다. 그 말한 것이 자세하였다. 가령 안자가 지금 살아있다면 나(사마천)는 비록 그를 위하여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도 즐겨 할 정도로 그를 欽慕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