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국사(國史)

천첩(賤妾)과 날이 새도록 한가하게 대화하다 - 이항복

야촌(1) 2010. 8. 18. 03:02

■ 신축칠월십구일야여천첩달서한화

    (辛丑七月十九日夜與賤妾達曙閑話)/이항복

    (신축년 칠월 구일 날 밤에 천첩(賤妾)과 날이 새도록 한가하게 대화하다/이항복)
 

신축년(1601 선조 34) 7월 19일 밤에 천기(天氣)는 매우 덥고 성월(星月)은 휘영청 밝은데, 잠이 오지 않아 베개에 기대어 천첩(賤妾 : 종이나 기생의 신분으로서 남의 첩이 된 여자)과 함께 새벽까지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첩이 말하기를,            

"대인(大人)께서는 심장(心腸)이 지나치게 강하시어 과감하게 떨쳐 버리는 일이 많으므로, 급한 때에 믿고 의지하기가 어렵습니다.”하였다. 인하여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첩이 말하기를,


"임진년의 변란 초기에 변보(邊報)가 날로 급해진 다음에야 감역(監役)이 기종(騎從)을 첩에게 보내 대인과 만나서 결별(訣別) 하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첩이 집에 왔는데, 마침 빈객들이 당(堂)에 가득하였습니다. 밤이 깊어 빈객들이 다 물러간 뒤에 사람을 시켜 엿보게 했더니, 대인께서는 그때 막 이불을 덮고 별사(別舍)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러자 감역이 첩으로 하여금 들어가서 작별 인사를 하도록 하므로, 그의 말에 따라 중문(中門)을 통하여 들어가니, 대인께서 첩이 온 것을 바라보고는 즉시 문을 닫고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첩이 문 밖에 서서, 잠시만 방으로 들어가 대면하여 결별하고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니, 대인께서 이에 응답하기를, ‘나도 정(情)이 없는 사람은 아니나, 다만 국사(國事)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사정을 돌볼 겨를이 없다.

 

지금 단란하게 마주앉아서 눈물이나 흘리는 것은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한갓 마음만 산란하게 된다.

너는 네 언니를 따라 잘 가거라. 언니가 스스로 네가 살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줄 것이다.’ 하고, 끝내 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새벽, 대인께서 조정에 나가실 때에 첩(妾)이 죽기로 작정하고 대인 앞에 돌진하여 대인의 허리띠를 붙잡고 잠시만 머물러서 첩에게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해 주기를 애원했으나, 대인께서는 두세 번 옷자락을 뿌리치다가 끝내는 패도(佩刀-허리에 차는 칼)를 뽑아 가지고 그 허리띠를 끊으려고 까지 하였습니다.

 

첩이 마지못하여 조금 물러섰더니, 대인께서는 마침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난리를 당해서 이러하였으니, 이것이 믿고 의지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고 하였다.

 

내가 이 말로 인하여 그 당시의 상황을 추억해 보니, 과연 그때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권속(眷屬)들과 서로 헤어지는 것에 연연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면 비록 어가(御駕)를 따라 서쪽으로 가더라도, 일을 만날 때마다 권속을 돌아보는 가운데 사려(思慮)가 분열되어 반드시 처음에 먹은 마음대로 일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여기었다.

 

 마침내 다시는 집안 사람들과 서로 만나지 않았고, 어린아이가 혹 눈앞에 와서 재롱을 부리던 것도 이로 인하여 중문을 닫아서 오는 길을 차단하였으며, 늙은 누이가 집에 왔을 때에도 대면하여 결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홀로 외사(外舍)에서 거처하다가 그대로 호종(扈從) 길에 올랐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생각해 보니, 그 처치한 것이 비정(非情)함에 관계되고 또 중정(中正)한 도리도 아니었으니, 참으로 학자(學者)가 취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헤아리건대, 역량(力量)과 소양(素養)이 견고하고 확실하지 못할 경우 난리를 당해서 만일 이렇게 처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마음이 허둥지둥 산란해져서 그 소행(素行)을 잃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조용하게 감당해 낼 수 없으면 차라리 과격한 조치를 취해야만 거의 시종(始終)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하여 행조(行朝)에서의 처사(處事)를 점검해 보니, 대단히 군급(窘急)한 데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지려(志慮)가 이미 쇠해지고 혈기(血氣) 또한 약해졌으니, 혹 다시 이런 때를 만난다면 반드시 이러한 처치를 이렇듯 명쾌하게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여 일을 그르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가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기록해서 스스로 경계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백사집> 백사별집 제4권 > 잡기(雜記)

◇천첩(賤妾) : 종이나 기생의 신분으로서 남의 첩이 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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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白沙先生別集卷之四>雜記

 

 辛丑七月十九日夜。天氣甚熱。星月昭明。倚枕無睡。與賤妾達曙閑話。妾言大人心腸過剛。多所擺脫。緩急難以爲恃。仍問曰何謂。妾言壬辰變初。邊報日急。然後監役遣騎邀致。使得面別訣。到家。賓客滿堂。至夜深客散。使人覸之。則大人方蒙被而卧別舍。監役使之就別。如其言。由中門而入。大人望見妾來。卽閉戶不應。妾立在戶外。請暫許入室面訣而死。則大人乃應曰。吾非無情者。但國事至此。不暇顧私。今若涕泣團欒。無益於事。徒亂人意。汝好好隨兄而去。兄自指示生道。終不應。及曉趍朝。妾决死突前。執帶願小留。有所指敎。大人拂衣再三。至拔佩刀。將斷其帶。妾不得已小却。大人仍遂不顧而去。臨亂如是。此其所以難恃也。余因此追思當時。果以爲。若與眷屬戀戀相別。以亂心慮。則雖隨駕西行。觸事內顧。思慮分裂。必不能終遂初心。遂不復與家人相見。小兒或時來戱眼前。因閉中門。以斷來路。老妹到家。不許面別。獨處外舍。因遂扈從。到今思之。其所處置。涉於非情。且非中正之道。誠學者之所不取也。然自料力量與所養。不能堅確。臨亂。處之苟不如是。必將顚倒誖亂。失其素履者多矣。苟不能從容。則無寧爲過激之擧。庶幾得全終始。仍自點檢。行朝時處事。則不至於大窘。今過十年。志慮已衰。血氣亦弱。倘遇如此之日。則必不能爲如此處置。如此快活。而其不至於狼狽失措者幾希矣。因書以自警。<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