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남(李鳳男)
[세 계] 상서공파 24世몽윤(夢尹)의 손자.
[생졸년] 1537년(중종 32)∼1593년(선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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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서중(瑞仲). 사도시정(司䆃寺正)몽윤(夢尹)의 손자이며, 안복(安福)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 16세에 처음으로 글을 배웠는데 “내 이미 부모를 잃었으니 진실로 힘써 배워 자립하지 아니하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소학》과 《근사록 近思錄》을 탐독하였다.
성균관에 입교하여 송익필(宋翼弼)· 정철(鄭澈)· 김장생(金長生)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요승 보우(普雨)의 죄를 극론하는 소를 올려 풍속을 바로잡고, 민심을 현혹하는 음사(淫祠)를 때려부순 송도유생(松都儒生)을 구하였다. 벼슬을 단념하고 할머니와 숙부모를 친어버이와 같이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서 선비의 모범을 보였다.
그의 인품과 학식에 감동한 내외 다수인의 천거로 희릉참봉(禧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할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서 3년간 시묘하였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