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순곤(李順坤)

야촌(1) 2010. 3. 14. 02:53

■ 이순곤(李順坤)

   [생졸년] 1652년 09월 20일생(효종 3)~1729년 05월 17일졸(영조 5)

 

자(字)는 중후(仲厚), 본관은 경주(慶州)로 증조는 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고 조부는 증 승정원 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경회(慶會)요.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인형(寅馨)이고, 어머니는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 순흥안씨(順興 安氏) 사이에서 1652년 9월 20일(효종 3)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위(配位)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와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 이다. 형으로 재곤(李載坤)이 있다. 1675년(숙종 원년) 선전관(宣傳官)에 특별히 천거(薦擧=別薦)되고, 1696년(숙종 22) 12월에 순천 군수(順天郡守)로 제수되고 재임시 심한 흉년이 들어 군민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그는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즉시 창고의 군량미를 열어 간직하였던 쌀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창고에 있는 쌀이 모자라자 자기 녹봉으로 쌀을 사서 나누어 줌으로서 군민들은 공의 은혜로움으로 인해 굶는 사람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공은 힘이 세고 담이 매우 컸었며.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 승지(承旨)을 거쳐 충청수사(忠淸水使), 경상좌우병사(慶尙左右兵使), 함경남북병사(咸鏡南北兵使), 부총관(副摠管)등 중요 요직을 역임했다(병사는 오늘날 육군 대장이오, 수사는 해군 대장격이다)

 

말년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인 진천에 낙향하여 살고있을 때다,

1728년(영조 4)봄, 이인좌(李麟佐)의 난때, 그의 부하  신천영(申天永)이 반역의 뜻을 품고 역도(逆徒)를 규합하여  패치고개(패치를 이치(梨峙)라고도 부른다)에 주둔 할때였다. 공(公)은 이 사실에 의분을 참지 못하여 77세 노령의 몸으로, 사방에서 의병을 모아 한바탕 싸움을 벌렸다.

 

결국 신천영(申天永)의 반란군은 이순곤(李順坤)의 80여명 농군 의병에게 견디지 못하고, 패전하여 도주하다 이곳에서 잡히고 말았는데, 이 때부터 신천영(申天永)이 패한 고개라 하여 패치(敗峙)라 한다. 이듬해인 1729년(영조 5) 5월 17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주이씨 풍천공 종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호명리에 있으며, 상석·망주석·문관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 후 조정에서 제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978년 묘소 입구에 후손들이 세운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좌의정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것이다. 후손들이 청원군 북이면 호명리에 재실(齋室)을 지어 매년 향사하고 있다.

 

 

↑묘의 원경

 

 

 

 

 

 

 

 

 

 

 

 

 

 

 

 

 

 

 

묘소사진 출처 : 수암풍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