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고려 익재 이제현의 4번정승 연역(沿革)

야촌(1) 2010. 2. 25. 03:33

■ 고려 익재 이제현의 4회정승 연혁(沿革)

 

임진 1352년(공민왕 1) 겨울 66세에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정승(右政承)에 임명 되었다.

그후 자기보다 윗자리에 있음을 시기하는 역신(逆臣) 조일신(趙日新)의 눈치를 알아채고, 3번이나 사직소를 내고 물러났다.

 

임진 1352년 10월 66세에 조일신이 반란을 일어켜, 주륙당하자 다시 우정승을 제수받고 이듬해인 계사 1353년 1월 사직했다.

갑오 1354년 12월 68세에 다시 우정승에 제수되었으나 다음해인 1355년 사임했다.

병신 1356년 12월 70세에 문하시중이 되고, 다음해 1357년 5월에 본직으로 치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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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승((右政承)은 당시 임금 다음의 높은관직임.

◇조선시대엔 좌정승이 우정성의 윗자리이나 원나라에서는 우정승이 좌정승의 위의직급이었다.

   따라서 고려도 우정성이 좌정승 보다 높은 직급으로 하였다.

 

1308년(충렬왕 34) 첨의부(僉議府)가 도첨의부(都僉議府)로 바뀜에 따라, 정승(政承)이라고 불렀다.

1356년(공민왕 5) 관제의 전면적 복구에 따라, 문하시중으로 다시 복구하고,

1362년(공민왕 11)에 중서문하성이 도첨의부로 바뀌자 다시 첨의 좌정승과 첨의 우정승으로 불리었다.

1369년(공민왕 18) 도첨의부가 문하부로 고쳐지자 문하좌시중과 문하우시중으로 불렀다.

 

◇우정승이나 문하시중은 동일한 직급의 관직이다.

◇치사(致仕) : 조선시대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일. 당상관으로서 치사하는 경우에는 중앙의 예

   조나 해당 고을에서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엇고, 벼슬이 1품에 이르고 나이가 70세 이상이 된자가 국가의 필요

   에 의해서 퇴관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궤장(几杖)을 하사 하였다.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