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술지부(述志賦)-이원(李黿)

야촌(1) 2010. 2. 9. 21:43

이원(李黿 )선생께서 예조좌랑에 재직시 태상관(太常官)의 봉상시(奉常寺)를 겸직하면서 김종직(金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諡號)를 내리자고 청했다는 이유로, 1498년(연산 4) 무오사화(戊午士禍)때, 평안도 곽산(郭山)으로, 귀양가서 본인의 비통한 심정을 지은 글입니다.

선생께선 이곳에 유배된 후, 2년뒤 1500년(연산 6)에 다시 전라도 나주(羅州)로 이배(移配)되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문인(文人)이라 하여, 1504년(연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때, 벌을 가중시켜 연산군(燕山君)으로 부터 능지처참(陵遲處斬)당했다. 이로서 선생의 부모형제(父母兄第) 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고의 삶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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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지부(述志賦) / 이원(李黿)



슬프다. 나의 운명 좋지 못함이여 / 哀余命之不淑兮
어찌 홀로 이 어려움에 걸렸는고 / 胡獨遇此艱難


시세가 어찌할 수 없음이여 / 豈時世之莫可兮
진실로 나의 행실 단정치 못함이네 / 良所行之非端


내가 처음 학문에 뜻 둘 때에 / 昔余志于初學兮
다른 길로 안 가기를 맹세했네 / 誓不由乎他岐


공자 맹자로 스승 삼음이여 / 仰孔孟以爲師兮
성문을 가리키며 기약했네 / 指聖門以爲期


중도에 자획할까 두려워하여 / 懼中途之自畫兮
날과 달로 쉬잖았네 / 綿日月而不衰


하늘을 어이 높다고 구하지 않았으며 / 天何高而不求兮
못을 어이 깊다고 그만두었으랴 / 淵何深而可已


위 아래로 오르내리려고 힘씀이여 / 曰勉升降以上下兮
일관의 미묘한 뜻 연구하였네 / 究一貫之微旨


내가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알았음이여 / 知得返乎吾初兮
앞 성현들 따를 수 있다 하였네 / 謂前脩之可企


바탕이 엷은 줄을 모르고서 / 不虞質之菲薄兮
드디어 벼슬길에 마음 두었네 / 遂遊心於登仕


칠조처럼 스스로 알지 못했음이여 / 非漆雕之自明兮
어찌 감히 대의를 알았으랴 / 安敢見乎大義


겨우 조정의 끝 반열에 이름 둠이여 / 纔添名於末班兮
발길을 못 돌려서 화가 닥쳤네 / 不旋踵而禍至


나의 발을 형틀에 상함이여 / 傷余趾於屨校兮
나의 몸에 착고를 채웠구나 / 勞余身於梏桎


곤장으로 두들기고 / 喧囂敲扑
도끼로 이리저리 / 縱橫鈇鑕


불꽃 한창 치성할 제 / 紛火炎之孔熾兮
옥과 돌이 구분되랴 / 孰爲玉而爲石


다행히 임금 은혜 하늘 같음이여 / 幸聖恩之如天兮
솥에 삶김 면하였네 / 得免身於鼎鑊


아침에 금부에서 결을 받음이여 / 朝受玦於虎閣兮
저녁에는 벽제역에 이르렀네 / 夕余至乎碧蹄


위문하러 오는 벗은 없고 / 無朋友之來弔兮
부형이 모여 우네 / 有父兄之聚啼


빽빽 우는 어린 자식 / 呱呱稚子
불쌍한 젊은 아내 / 哀哀弱妻


백악산이 보일락말락 차츰 멀어짐이여 / 華山隱映以漸遠兮
임금의 궁궐 멀고 깊네 / 君門邈以深邃


속히 돌아오지 못할 줄을 앎이여 / 知不可以速返兮
서울을 돌아보고 눈물 떨구네 / 顧京師以涕淚


낙일이 어둑어둑 장차 넘어감이여 / 落日晻晻而將頹兮
괴이한 올빼미는 숲 사이에 우는구나 / 怪梟飛鳴於林閒


평안도를 바라보니 멀기가 몇 리나 된단 말까 / 望關西其幾里兮
길도 멀어 2천 리라 / 路漫漫其二千


대동강과 청천강 건넘이여 / 凌浿江而渡薩水兮
기한의 푸른 산에 닿았구나 / 抵岐漢之翠黛


동뢰를 건너서 남으로 바라봄이여 / 涉東瀨以南望兮
외로운 성이 흙 한덩이 같네 / 有孤城之如塊


서해의 장연을 눌러 있고 / 壓西海之瘴煙兮
북해 오랑캐의 짐승 가죽 움막과 통하였네 / 通北戎之毳廬


진옹 같은 억센 기풍이 많음이여 / 多秦雍之勁氣兮
추로의 시서는 없네 / 少鄒魯之詩書


몇 자 땅을 빌려 초가 지붕 얽음이여 / 借隙地以葺茅兮
무릎 하나 용납하려네 / 冀一滕之可容


화에 걸림 너무 크니 / 嗟羅禍之孔大兮
뉘라서 너의 궁함 불쌍히 여기리 / 孰肯哀余之窮也


형문이 적막하여 참새가 많아 그물 칠 만하고 / 衡門寂兮雀羅
섬돌은 거친 이끼로 봉하였네 / 石砌荒兮苔封


죽은 재에 불 꺼졌고 / 火寒宿灰
외로운 평상에 달빛 가득 / 月滿孤床


외로이 살아 짝 없음이여 / 塊獨處而無儔兮
나의 눈물 눈가에 가득 / 渙余涕之盈眶


먼 개펄에 봄 깊고 / 若乃春深極浦
쇠잔한 성에 해 저무네 / 日暮殘城


물가 풀은 돋아나고 / 汀草怒發
강 비가 잠깐 갤 제 / 江雨乍晴


구름은 침침하고 / 雲沈沈兮水府
몰밤 잎 푸르르네 / 綠萋萋兮蘋渚


임 생각 해 보지 못하니 / 思美人兮不見
난초로〈패(佩)〉를 맺으며 우두커니 서 있네 / 結幽蘭以延竚


파초 잎에 바람 울고 / 且如風鳴蕉葉
차가운 창에 이슬 듣네 / 露滴寒窻


긴 공중에 기러기 울고 / 雁叫長空
쇠잔한 등잔에 불 어둡네 / 燈暗殘缸


때를 잘못 태어났으니 / 嘆我生之不辰兮
낳아 기르신〉 보모님의 수고로움 생각되네 / 念父母之劬勞


갈려 있는 형제 슬프고 / 悲鶺鳹之在原兮
양친의 돌아가심 통곡하네 / 泣蓼莪之伊蒿


매양 뒤척거려 잠 못 이룸이여 / 恒展轉而不寐兮
마음은 조급하여 타누나 / 心燥熱而煎熬


그만두어라 / 已矣乎
하늘이 물을 낼 제 / 天之賦物


만 가지로 같지 않네 / 有萬不一
궁한 자는 절로 궁하고 / 窮者自窮


달한 자는 절로 달하네 / 達者自達
작을 자는 절로 작고 / 小者自小


큰 것은 절로 크나니 / 大者自大
현달한 이는 이윤의 상 나라요, 여상의 주 나라요 / 達則伊商呂周


궁한 이는 맹자가 제 나라에서, 공자가 진채에서 당함이라 / 窮則孟齊孔蔡
큰 것은 붕새 날개가 커서 하늘에 드리웠고 / 大而鵬翼垂天


작은 것은 초명이 모기등에 붙어 있다 / 小而焦螟集蚊
만세나 사는 춘나무요 / 萬歲之椿


아침에 났다 저녁에 죽는 버섯이네 / 朝夕之菌
주공의 부함이요 / 周公之富


원헌(공자의 제자)의 가난함이라 / 原憲之貧
물이 각각 다른 것은 / 物之不齊


운명이 있는 바라 / 有命存焉
아래로는 사람 탓 아니하고 / 下不怨人


위로는 하늘 원망 아니하네 / 上不怨天
하늘의 하는 대로 즐기고 운명을 앎은 / 樂天知命
공부자의 단사로세 / 固夫子之彖辭


앞 성인에 의지하여 중정으로 절제함이여 / 依前聖以節中兮
당한 대로 편히 함이 이 같으리 / 安所遇而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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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일관(一貫) :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와 자공(子貢)에게 말하기를, “우리 도[吾道]는 하나로써 꿰느니  라

                                    .[一以貫之]”하였다.  

 

[주02] 처음 : 사람의 처음에 타고난 착한 본성이란 뜻이다. 공자가 그의 제자 칠조개(漆雕開)에게, “너는 왜 벼슬하

                        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였다.

 

[주03] 대의(大義) : 정자(程子)는, “칠조개(漆雕開)는 이미 대의(大義)를 보았다.” 하였다.

 

[주04] 나의---상함이여 : 《주역》에서 나온 말인데 여기서는 작자가 연산군(燕山君) 때에 무오사화(戊午史禍)에

                         걸려서 형벌을 받음을 말함이다.

 

[주05] 옥과 돌이 구분되랴 : 옛적에 신하가 죄를 얻어 쫓겨나면 국경에서 임금의 명령을 기다린다. 임금이 환(環 빙

             둘려 끊어지지 않은 고리)을 주면 돌아오라[還]는 것이요, 틈이 벌어진 결(玦)을 주면 영영 오지 말라[訣]는

             것이다.

 

[주06] 형문(衡門) : 오막살이 집에 벽에다 나무를 가로질러서 문을 만든 것을 형문(衡門 : 撗門)이라 한다.

 

[주07] 난초[蘭]도---맺으며 : 《초사(楚辭)》에서 나온 말인데, 향기 나는 난초로 패(佩)를 만드는 것은 몸을 깨끗

             이 꾸민다는 뜻이다.

 

[주08] 궁한 이는 맹자가---당함이라 : 맹자는 제(齊) 나라에서 도(道)를 행하지 못하고 갔으며, 공자는 진채(陳蔡)

             에서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7일 동안 굶은 일이 있었다.

 

[주09] 주공(周公)의 부(富)함이요 : 《논어》에, “계씨(季氏) : 노국(魯國)의 권신(權臣)이 주공보다도 부(富)하

             다.”는 말이 있다.

자료 : 재사당일집. 동문선(東文選) > 속동문선 제2권 > 부(賦)


옮긴이 :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