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송 반룡여대사서(送盤龍如大師序[체원스님] - 최해

야촌(1) 2009. 12. 12. 03:26

■ 반룡(盤龍) 여대사(如大師)를 떠나보내며 주는  글

 

지은이>최해(崔瀣)

 

반룡정사(盤龍精舍)를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어려서 이미수[(李眉叟: 이인로(李仁老)]의 詩를 열람해 보니 시 속에대숙(大叔) 사리(闍梨)와 주고받은 작품들이 권마다 나왔는데, 고아가 된 자신을 거두어 훌륭하게 성장시켜 준 점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사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승려의 몸으로서 행한 독실한 행동이 사대부도 미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을 기특하게 여겼을 뿐이었는데, 나중에 이씨(李氏)의 종인(宗人)을 만나서 물어보았더니 이분이 바로 반룡사(盤龍社)를연 승통(僧統) 일(一) 스님이며, 사(社)는 불도(佛道)를 배우는 자들이 쉽게 자포 자기하는 것을 걱정하여 그들을 채찍질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하여, 불교에 힘을 쓴 것이 적지 않았음을 또 알 수 있었다. 

 

그의 제자들이 대대로 그 법을 지켜 실추시키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우리나라 화엄종(華嚴宗)의 큰 도량(道場)이 되었다.

태정(泰定)초에 원나라에서 화엄 교학을 배워 온대사문(大沙門)과 강주(講主)들이 원로들을 통해서 청하면서 모두들 사(社)에 주법(主法)이 없다 하여, 법수사(法水寺)의 당두(堂頭)각해(覺海 : 불교의 세계) 여(如) 스님을 추대하였다. 그리고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에게 건의하니 도첨의사사 또한 허락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사양하지 못하고 장차 날을 잡아 떠나려 하였으므로 내가 찾아가서 작별을 하였는데, 손님들 가운데 운자(韻字)를 나누어 시를 지어서 증정하려는 이들이 나에게 그 서문부터 먼저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일찍부터『유도(儒道)만 알고 불교를 모르면 부처가 되는데 지장이 없지만, 불교만 알고 유도를 알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다.』 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세상에서 불교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부처가 되려면 먼저 친애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려야 한다.』고들 한다.

 

무릇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친족을 사랑하는 친친(親親)에서 근원하는데, 친족 관계를 끊어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 누가 부처가 된단 말인가. 이런 방법으로 부처가 되기를 구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예컨대 일(一) 스님이 고아가 된 조카를 길러 마침내 그 가문을 크게 일으킨 것이 그가 과연 친애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겠는가.

 

친한 이를 친히 여기는 마음은 모든 행동의 시발점이니, 이를 미루어 행하면 유도든 불교든 또한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돌이켜 보건대 일 스님이 사(社)를 조직하고 무리를 취합하여 불교의 참된 교리를 밝게 드러내어 밝힘으로써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번창하게 만든 것은 모두 이를 말미암은 것이다.


여(如) 스님은 묘령의 나이에 머리를 깎아 출중한 실력으로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태위상왕(太尉上王 충선왕)의 인정을 받아 높은 승직(僧職)을 받고 이름난 사찰의 직책을 제수받았으나,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차마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탕약을 올릴 때에도 반드시 먼저 맛을 보았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형제간에 더욱 우애하였다.

 

이는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천성에서 우러난 것으로, 비록 불법을 배웠다 하지만 일에 대한 취사선택에 있어서는 유도에서 강조하는 선후(先後)의 차례가 있음을 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일(一) 스님의 도량(道場)에 다시 향화(香火)를 새롭게 피우고 불법(佛法)을 크게 떨칠 사람으로 대사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중론(衆論)이 대사를 추대하면서 어떠한 군말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말한 불교도 알고 유도(儒道)도 아는 사람으로는 위의 두 대사가 거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내 뜻을 기록하여 서문을 삼는다. 여기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은 제공(諸公)의 작품 속에 들어 있다.


대사(大師)는 동암(東菴) 이 문정공[李文定公 이진(李瑱)]의 둘째 아들이며, 지금 왕부단사관(王府斷事官) 국상(國相) 익재공(益齋公)의 형이다. 당대의 명사들과 잘 사귀어 회안군(淮安君)과 그 아우 창원공(昌原公) 같은 귀공자들이 모두 대사를 경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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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대숙(大叔) 사리(闍梨) : 대숙(大叔)은『큰 숙부』즉 아버지 형제 가운데 백부(伯父) 다음의 두 번째를 뜻

            하며, 사리는 아사리(阿闍梨)를 말하는 것으로 법사(法師)라는 뜻의 범어(梵語) ācārya의 음역(音譯)이

            다.

 

인천 이씨 세계도에 의하면, 이인로의 조부 이언림(李彦林)에게 광진(光縉), 요일, 백선(伯仙) 등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인로는 백선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인로는 무신난 때에 잠시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최충헌열전(崔忠獻列傳)에, 흥왕사의 불상(佛像)이 완성되어 그 축하연에 최충헌이 가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흥왕사의 승통 요일과 중서령(中書令) 두경승(杜景升)이 최충헌을 모해하려고 한다는 익명서를 던졌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보아 요일은 무신 정권에 비판적인 승려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주02] 이씨(李氏)의 종인(宗人): 이인로의 후손인 인천 이씨(仁川李氏) 종친을 이른다.


[주03] 승통(僧統) : 고려 시대 교종(敎宗)의 법계(法階) 가운데 하나로서, 가장 높은 등급인 왕사(王師)의 아래이

             고 수좌(首座)의 위이다.


[주04] 일(一) 스님 : 법명을 한 글자로 표기할 경우 일반적으로 두 글자의 법명 가운데 두 번째 글자로 표기한다. 여

             기에서 일(一) 스님은 이인로(李仁老)의 큰아버지로서 승려가 된 요일(寥一) 스님을 가리키는데, 요일 스님

            은 이인로가 고아가 되었을 때 그를 거두어 성장시킨 인물로 흥왕사(興王寺)의 승통을 지내기도 하였다.

 

인천 이씨 세계도에 의하면, 이인로의 조부 이언림(李彦林)에게 광진(光縉), 요일, 백선(伯仙) 등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인로는 백선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인로는 무신난 때에 잠시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최충헌열전(崔忠獻列傳)에, 흥왕사의 불상(佛像)이 완성되어 그 축하연에 최충헌이 가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흥왕사의 승통 요일과 중서령(中書令) 두경승(杜景升)이 최충헌을 모해하려고 한다는 익명서를 던졌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보아 요일은 무신 정권에 비판적인 승려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주05] 사(社) : 결사(結社)를 이른다.


[주06] 태정(泰定): 원나라 진종(晉宗)의 연호로, 1324년 〜 1327년이다.


[주07] 대사문(大沙門) : 사문(沙門)은 불문(佛門)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승려를 말하며, 대사문은 그들 가

            운데 가장 존귀한 인물인 부처나 큰스님을 일컫는다.


[주08] 강주(講主): 불교 경전과 교학(敎學)을 강의하는 승려로서 강사(講師), 강승(講僧), 강사(講士), 강장

            (講匠)으로도 불린다.


[주09] 법수사(法水寺)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조에 법수사는 가야

            산(伽倻山) 쪽에 있는 절이라고 되어 있으나, 그곳이 바로 이 절을 지칭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주10] 당두(堂頭) : 절의 주지(住持)에 해당한다.


[주11 ]회안군(淮安君): 왕족인 왕온(王昷)의 첫째 아들로 이름은 순(珣)이다.


[주12] 창원공(昌原公): 왕온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우(瑀)이다.


 수록문헌 : 최해(崔瀣) 著 졸고천백(拙藁千百) 제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