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래(李 來)
[생졸년] 1362년(공민11)~1416년(태종16)]
[고려문과] 우왕(禑王) 9년(1383) 계해(癸亥) 계해방(癸亥榜) 병과(丙科) 1위(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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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本貫)은 경주(慶州), 시호(諡號)는 공의(恭懿), 고려 때 이조참판(吏曺參判)을 지냈다. 초명은 래(徠), 자(字)는 낙보(樂甫), 우정언 존오(存吾)의 아들, 우현보(禹玄寶)의 문인,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71년(공민왕 20), 아버지 존오가 신돈(辛旽)의 처벌을 주장 하다가 유배되어 죽고, 이어 신돈이 처형된 뒤 1371년 9세의 어린 나이에 전객 녹사(專屬錄事)에 특임 되었다. 1383년(우왕 9) 문과(文科)에 급제, 공양왕 때,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가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가 살해 당하고, 그 일당으로 몰려 계림에 유배 되었다가 공주(公州)에 은거 하였다. 1399년(정종 1)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이듬해 방간(芳幹)의 난(亂) 평정에 공이 있어 추충좌명공신 2등에 책록 되었다. 이어 좌군동지총재, 계림군에 봉해졌다.
1402년(태종 2) 첨서승추부사, 대사간(大司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 하였다. 1404년(태종 4) 대사헌, 이듬해 대제학(大提學), 1407년(태종 7) 좌빈객(左賓客)을 지냈다. 1408년 지의정부사, 겸 판경승부사가 되고, 태종 묘정에 배향 되었다. 시호(諡號)는 경절(景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