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世 성균진사 이성일(成均進士 李聖一)
[세계] 익재공 후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의 현손임.
[생몰년] 1680년(숙종 6) ~ 1752년(영조 28).
[생원진사시] 영조(英祖) 5년(1729년) 기유(己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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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숙종 6)-1752년(영조 28) 때의 학자. 오늘날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그는 형조판서 시발(時發)의 현손(玄孫 )으로, 자는 일지(一之), 호(號)는 죽창(竹窓), 아버지 준곤(埈坤)과 어머니 고령김씨(高靈金氏) 호군(護軍/行 從仕郞-正九品) 정중(鼎重/松菴先生之後)의 딸 사이에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전심을 다하기 위해 과시를 미뤘는데, 1722년(경종 2) 3월 3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년 여막살이 탈상을 마친 뒤 나이 50이 되던 1729년(영조 5)에 성균 진사(成均館 進士)에 합격했다.
신 청천 유한(申 靑泉 維翰)과 같이 배우매 신공(申公)이 필(筆)을 놓고 말하기를, 나는 못 따르겠다고 했으며 널리 경사(京師)에 놀매 최 곤륜 창대(崔昆侖 昌大)와 공(公)의 재종조 담헌 하곤(再從祖 澹軒 夏坤) 또한 극구 칭찬(極口稱讚)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다.
배(配)는 진양인(晉陽人) 충의공(忠毅公),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의 증손녀(曾孫女)로 진사(進士) 선영(善韺)의 딸이다. 저서로 죽창유고(竹窓遺稿)가 있다. 묘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직동 사례곡 장등 해좌 쌍분(高靈郡 開津面 陽田里 直洞 舍禮谷 長嶝 亥坐)이고 창녕 성기덕(成耆悳)이 찬한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高靈郡誌
◇慶州李氏世譜(1860년)
筆者 :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