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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는 닭을 죽이려고 하나...

야촌(1) 2009. 5. 7. 10:18

■ 이원(李黿)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고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이다.

성종 기유년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좌랑에 이르렀다.

 

무오년에 곤장을 맞고 나주(羅州)로 귀양갔다가 갑자년에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中宗) 초년에 도승지를 증직하였다.

 

●공은 기상이 당당하여 절개를 위해 죽을 각오가 있었으니, 어린 임금을 부탁할 만 하였다. 《사우명행록》

 

●공의 아버지 공린(公麟) 벼슬은 현령이다. 이 박팽년의 딸에게 장가들어 혼례를 거행하던 날 밤 꿈에 늙은 첨지 8

    명이 절하면서 청하기를, “우리들은 장차 솥에 삶겨 죽게 되었는데, 만약 죽는 생명을 살려 주시면 후하게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였다.

 

   공린이 놀라서 일어나 보니, 음식 만드는 사람이 자라 여덟 마리로 국을 끓이려고 하므로 즉시 강물에 놓아 보내게

   하였다. 자라 한 마리가 빠져 달아나기에 어린 종이 삽을 가지고 잡으려다가 잘못하여 그 목을 끊어 죽였다.

 

   그날 밤에 또 꿈을 꾸니 7명이 와서 감사하였다. 그 후에 공린이 아들 8명을 낳았는데 이름을 오ㆍ귀ㆍ원ㆍ타ㆍ별ㆍㆍ경ㆍ곤(鼇.龜.黿.鼉.鼈.鼊.鯨. 鯤)으로 지었으니, 그 꿈의 상서를 기념한 것이었다. 모두 재주와 명성이 있었

  다.

 

   공은 문장과 행의(行義)로써 더욱 세상 사람의 추앙을 받았는데 갑자년에 비명에 죽었으니, 그 징험이 더욱 뚜렷

   한 이다. 지금도 이씨(李氏)들은 자라를 먹지 아니한다. 《부계기문》

 

●팔 형제를

①순씨(荀氏)의 팔룡(八龍)에 비하면서 공을 지목하여

②자명(慈明)이라 하였다. 태상(太常 시호를 주는 것을 맡은 관청)에 있으면서 김종직(金宗直)의 시호를 문충(文

    忠)으로 하자고 의논하였다는 이유로 무오사화 때에 죄를 만들어 나주(羅州)로 귀양 보냈다.

 

   갑자년에 죄가 더하니 공의 종이 공을 업고 도망하려 하였으나 공은 “임금의 명은 피할 수 없다.”하였다.

   종은 이장곤(李長坤)의 일을 인용하여 울면서 권고하였으나 끝내 듣지 아니하였다. 형장에 이르러서도 말이 더욱

   굳세니, 연산주가 더욱 노하여 형벌을 가등(加等)하였다.

 

●남효온(南孝溫)이 일찍이 말하기를, “익재(益齋)의 후손이고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이니, 두 집의 어짐이 한 사

    람에게 모이었다.” 하였다.

 

●공의 아우 별(鼈=자는 낭선(浪仙)이다.) 은 공과 더불어 울면서 교외에서 작별하고, 이 뒤로는 과거를 보지 아니

    하였다. 평산(平山)에 살면서 그 당(堂) 이름을 ‘장륙당(藏六堂)’이라고 하였다.

 

   늘 소를 타고 술을 싣고 고을의 노인과 더불어 낚시질을 하고 혹은 사냥도 하였으니 시를 읊고 술을 따르며 해가

   저물어도 돌아갈 줄을 몰랐다. 매양 술이 취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시(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③내가 우는 닭을 죽이려고 하나 순같은 성인이 있을까 염려된다.

   죽이지 않으려고 하나 역시 도척(盜跖)같은 횡포한 자가 있구나. 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에 울어 그치지 않으니 순

   과 도척이 함께 듣게 된다. 선과 악을 각기 힘쓰니 울지 않는 것은 닭의 천성이 아니다.” 하였다. 《패관잡기》

 

●공은 타고난 자질이 호탕하고 영걸스러우며, 풍채가 뛰어나고 문장도 높고 깨끗하였다.

   비록 방랑불우(放浪不遇)한 때라도 슬퍼하고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한평생 서적을 많이 보았지마는 성인의 도를 훼방한 글은 읽지 아니하였다.

   김일손(金馹孫)은 남의 문장을 추켜올리는 일이 적었는데 공의 ‘금강록(金剛錄)’을 보고는, “이보다 더 잘 지을

   수 없다.” 하였다.

 

[참고자료]

연려실기술 제6권.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故事本末) 무오당적(戊午黨籍)에서

 

①팔룡(八龍) : 한(漢) 나라 순숙(荀淑)의 아들 팔 형제가 모두 훌륭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순씨 팔룡(荀

    氏八龍)’이라 하였다.

 

②자명(慈明) : 순씨팔용(荀氏八龍) 가운데 가장 나은 사람.

 

③내가 …… 염려된다 : 맹자의 말에,

   “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착한 일만 하는 것은 순(舜)의 무리요, 닭이 울때부터 부지런히 이익만 구하는

   것은 도척(盜賊 중국 춘추시대의 몹시 악한 사람인데, 몹시 악한 사람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의 무리이다.”하였

   다.

 

   이원의 자는 낭옹(浪翁)이며, 호는 재사당(再思堂)이요, 본관은 경주(慶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