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심충겸 묘(沈忠謙墓)

야촌(1) 2008. 11. 2. 23:30

심충겸 묘(沈忠謙墓)

생졸년 :  1545년 ∼ 1594년)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 전면에 묘역이 보인다.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산 135-1

  묘역은 최근에 정비하여 잔디가 새로 입혀져 있고... 큰 비에 대비하여 비닐을 씌웠다. 

 

↑윗쪽에 있는 묘가 심충겸선생 묘이다...

 

 ↑마침 찾아간 날 비가 내려 땅이 질퍽거렸다.

 

↑심충겸 상석(沈忠謙床石)

 

↑심충겸 묘표((沈忠謙墓表)

 

 ↑문인석 및 망주

 

 

 

 

 

↑심충겸 선생의 신도비는 묘역 우측의 자연석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묘역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심충겸 선생 묘역 후경이다(남한강물이 묘를 향해 입수되고 있다)

 

사진출처 : 나홀로테마여행(능원묘 자료 및 회원 답사기 게시판) ㅣ 글쓴이 : 릴리리아 

 

■ 심충겸(沈忠謙)

 

심충겸[沈忠謙, 1545(인종 1)∼1594(선조 27)]. 조선 선조때의 문신으로 자는 공직(公直), 호는 사양당(四養堂), 본관은 청송(靑松), 청능부원군강(靑陵府院君 鋼)의 아들, 서인(西人)의 영수 의겸(義謙)의 아우, 명종비 인순왕후(明宗妃 仁順王后)의 동생이다.

 

명종19년(1564) 사마시(司馬試), 선조5년(1572)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장원한 후 정언(正言)에 발탁되었다. 지평(持平)·헌납(獻納)·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임진왜란 때는 병조참판으로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가 되어 왕을 호종(扈從)· 의주(義州)에 피난할 것을 역설했고, 세자 광해군(光海君)을 호위하여 일본군 방위에 힘썼다.

 

선조26년(1593) 호조와 병조의 참판으로 우빈객(右賓客)을 겸직, 군량미 조달에 크게 활약한 뒤 병조판서에 특진(特進)되었다. 청림군(靑林君)에 추봉(追封)되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특히 글씨를 잘 썼으며, 저서에 [사양당집(四養堂集)]이 있다.

 

묘는 정경부인 전주이씨(貞敬夫人 全州李氏)와 합장묘로,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그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등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장방형의 암석 위에 대리석 비신을 세웠는데, 규모는 높이 197㎝, 폭 87㎝, 두께 30㎝ 이다.

 

비문은 신흠(申欽)이 짓고 심열(沈悅)이 글씨를 썼는데, 비의 전체 부분이 풍화(風化)로 마멸되고 이끼가 켜서 판독(判讀)하기 어렵다. 묘역 아래에는 선생을 제향(祭享)하는 사당 충익사(忠翼祠)가 있다.  묘의 소재지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산 135-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