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갑(羅萬甲 : 조선중기의 문신)
1592(선조 25) ~ 1642(인조 20).
병자호란 때 군량 공급에 공을 세웠다.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 아버지는 세자시강원 보덕(輔德)을 지낸 급(級)이다. 장인인 정엽(鄭曄)에게 배웠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다. 인목대비 유폐사건이 일어나자 낙향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순릉참봉이 되고,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 되었다.
1625년 교리로 있을 때 서인(西人)인 김유(金瑬)가 북인인 남이공(南以恭)을 등용하자 이에 반대하다.
강동현감으로 쫓겨났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종사관이 되어 왕을 따라 강화도에 갔다. 병조정랑·수찬·지평·홍주목사·형조참의를 거쳐, 1636년 병자호란 때 공조참의. 병조참지로서 관향사(管餉使)가 되어 남한산성에 군량을 공급했다.
무고를 받아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1639년 풀려나와 영천(榮川:지금의 경북 영주)에 칩거했다. 저서에 〈병자록 丙子錄〉.〈구포집〉이 있다.<백과사전에서 인용>
↑나만갑(羅萬甲)선생 묘(안정나씨 선영 상단)
↑나만갑선생 묘 후경
↑나만갑선생 묘표
↑나만갑선생 묘의 문인상(백호쪽)
↑나만갑 선생의 신도비(비각 건립전의 모습)
↑나만갑 신도비각 좌측에 보이는 비석은 후손의 묘비이다.
↑나만갑선생의 안정나씨(安定 羅氏) 묘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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