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사성어

의문자수(倚門藉手)

야촌(1) 2006. 10. 29. 20:23

■ 의문자수(倚門藉手)

 

倚(의지할의), 門(문문), 藉(깔개자), 手(손수),자로 의문(倚門)이란? 남의집 문에 기대어 서있다는 말이니 걸식(乞食)의 뜻이요. 자수(藉手)는 손을 빌린다는 뜻이니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성어는 남의집 문전에서 걸식을 하며 간신히 끼니를 이어 나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효종랑(孝宗郞)이 남산(南山),포석정[鮑石亭 : 혹은 삼화술(三花述) 이라고도 했다]에서 놀고자 하자 문객(門客)들이 모두 급히 달려왔으나, 오직 두 사람 만이 뒤늦게 오므로 효종랑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들이 대답했다.

 

"분황사(芬皇寺),동쪽 마을에 한 여인이 있는데 나이는 20세 안팎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먼 어머니를 껴안고 서로 통곡 하므로 같은 마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이 여자는 집이 가난해서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한 지가 이제 여러 해가 되었는데 마침 흉년이 들어 이제 걸식해서 어머님을 살리기도 어렵게 되어 이에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 곡식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일을 해왔습니다.

 

날이 저물면 쌀을 가지고 집에 와서 밥을지어 먹고 어머니와 같이 잠을자고 새벽이면 주인 집에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지 며칠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전일에 강비(糠秕)를 먹을 때는 마음이 편하더니 요사이 쌀밥을 먹으니 창자를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사실 데로 말했더니 어머니는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자기가 다만 어머니의 구복(口腹)의 봉양만을 하고 얼굴빛을 잘 하지 못함을 탄식하여 서로 껴안고 울고 있는 것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구경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

효종랑은 이 말을 듣고 측은해 하여 곡식 100석을 보냈다. 낭의 부모도 또한 옷 한벌을 보냈으며, 수많은 낭(郎)의 무리들도 곡식 1,000석을 거두어 보내 주었다.

 

이 일이 왕에게 알려지자 그때 진성왕(眞聖王)은 곡식 500석과 집 한채를 내려주고 또 군사들을 보내서 그 집을 호위해서 도둑을 막도록 했다. 또 그 마을을 표창해서 효양리(孝養里)라 했으며 그 뒤에 그 집을 희사해서 절을 삼고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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